오늘의 묵상입니다.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요한이 왔을 때, 죄인들은 그를 믿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유대사회 지도층에게 하신 말씀으로 특이한 점은 '생각을 바꾸어' 또는 '생각을 바꾸지 않고'하시며 생각을 바꾸라는 말씀과 관련된 말씀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유대사회의 지도층은 생각을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에게는 생각을 바꾸라는 뜻에서 회개를 말씀하고 계시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민중들에게는 생각을 하라는 뜻에서 '깨어나라'고 하셨음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회개는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의미가 아니라 '생각을 바꾸라'는 말씀이며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삶의 방식도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그 어떤 변화도 있을 수 없으므로 구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발전의 원동력은 생각을 바꾸는데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모두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어떤 지식도 완전한 것이 없음에도 내가 아는 것은, 내 생각은 완전하다고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 생각은 잘못되었거나 불완전하다고 믿어야 자기 자신에게도 발전이 있습니다. 내 생각은 언제나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이며 오직 내만이 진리라는 이런 오만한 지도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는 자신을 예수님으로, 하느님으로 착각하지 않고는 그런 독선적인 생각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시 유대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그들의 율법은 오류가 없는 완전한 율법이라고 믿는데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만든 율법 중에서 완전한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현재의 모든 율법도 모두가 불완전한 것들입니다. 완전하신 분은 하느님 한 분뿐임에도 율법이 완전하다고 믿는다면 율법이 곧 하느님이 되므로 그때부터는 하느님은 사라지고 율법만 남게 됩니다. 그 어떤 율법도 영원한 진리가 아니므로 율법을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영원한 진리로 믿는 것은 분별되어야 하고, 율법을 불변의 진리로 고수하면 환경적 변화에 대처할 수 없으므로 그 생명체는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생물체도 완전할 수 없으므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를 거부하는 생명체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연선택의 진화를 통해서도 증명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는 율법 때문에 더 이상 변화할 수 없으므로 결국에는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이런 '하느님의 뜻'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율법을 더 이상 고집하지 말고 생각을 바꿔야한다는 사실을유대 지도자들에게 충고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은 당시 유대사회에만 국한된 말씀이 아니라 영원할 수밖에 없는 진리의 말씀이므로 우리 교회도 오늘 복음을 명심해야하며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리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자비와 사랑이고, 법보다 더 우선하는 것도 자비와 사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며 자비와 사랑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믿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우리 모두는 현재에 안주하고 싶기 때문에, 특히 현재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은 더 더욱 그럴 것입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변화를 거부할 수밖에 없고, 현재의 삶을 개선하려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리와 창녀는 죄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으므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며, 기득권을 누리며 현실에 안주하는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당연히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생각을 바꿔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씀 중에서 가장 왜곡된 말씀은 믿음과 관련된 말씀으로 오늘 말씀에서의 '믿었다' 등이 이에 속할 것입니다. 믿음에 대하여는 교리를 믿는 것으로, 교회의 지시를 잘 따르는 것으로 왜곡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또 저희들도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교리를 믿지 않으면, 교회 지도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자로 낙인찍히고 있으므로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을 것은,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는 영원불변의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고, 믿음은 각 개인의 내적행위이므로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은 오직 사랑의 실천으로만 증명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을 어겼지만 생각을 바꿔 포도밭 일을 하였습니다. 다른 아들은‘가겠습니다.’하였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밭은 ‘사랑의 실천'을 말씀하고 계시므로 우리 신앙생활을 반성하라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믿나이다! 믿나이다! 하며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교리도 잘 지키고 있지만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작은 아들의 모습이 바로 저희 모습이 아닌가하는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입으로만 하겠다고 고백하지 않고 지금 이 시간에도 말없이 사랑을 실천하고 있을 것입니다. 두 아들 중에서 누가 더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는 물음에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맏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섬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일부에서는 사랑을 실천하여도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교의 신자가 아니므로 구원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 가톨릭교회가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고 있지만 오늘 복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제 보도에 의하면 개신교 모 교회에서는 서울 강남에 2,100억원을 들여서 대형 교회를 짓는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실존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교회지도자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실존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으로 모시는 것이며 초대형 건물을 지어서 모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수석 사제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우리 교회의 지도자이며 백성의 원로는 우리사회의 지도자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지도자들에게 특별히 하신 말씀이며, 내 생각만이 선이라는 독선에서 벗어나 사랑의 실천만이 진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를 하셨습니다. 이런 소중한 충고 말씀이 십자가의 수난과 함께 사라져버렸으므로 더 이상 기대할 곳이 없어 오직 주님의 재림만을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완전하신 분은 하느님 한 분뿐이심에도
자신만이 옳다고 믿고 나를 따르라는 지도자에게는 생각을 바꾸라 하셨으며
또한 저희에게는 완전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대신에 율법을 믿는 잘못된 믿음에서
깨어나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므로
이 땅의 모든 지도자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저희는 오직 하느님만을 믿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자들이 되도록
회개와 깨우침의 성령님을 보내주시어 주님의 길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