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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서해야 합니다 / 예수님이 내 안에서 흘리는 눈물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16 조회수459 추천수1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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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용서해야 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는 ‘풀어준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겪게 되는 정서적 대가를 ‘감옥’에 갇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마태 18, 21-35).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엄청난 고통에 가두어두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면 먼저 신체적 고통이 찾아옵니다. 면역력 저하, 두통, 위궤양, 고혈압, 안면 마비, 스트레스성 질환 등에 노출됩니다. 둘째, 심리적으로는 정서 고갈, 주의력 결핍, 우울증, 탈진, 불안 등이 찾아옵니다. 셋째, 영적 고통으로 성장하지 못하며 고통이 다음 세대에 이어지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일곱 번에 일흔 번씩’ 용서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화해는 선택입니다. 용서는 상대방과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가능하지만 화해는 쌍방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용서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기도를 통해 누릴 수 있는 영적 은사이기도 합니다. 먼저 용서해야 할 영역을 보여주시도록 구하십시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적개심, 쓴 뿌리, 증오심, 탐욕 등을 하느님께 고백하고 십자가에 내려놓으십시오. 용서의 과정을 거칠 수 있는 은혜를 구함으로써 용서가 진정한 마음의 용서가 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용서한 사람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이 변하기를 주장하지 마십시오. 용서를 행동으로 나타내십시오.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행복으로 가는 문이 거기에 있습니다.

(고병인님 참조)



예수님이 내 안에서 흘리는 눈물
(묵상 : 요한복음 11, 33-35)


탈무드를 보면 “
비누는 몸을 닦는 데 사용하고 눈물은 마음을 닦는 데 사용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눈물은 사람의 감정을 순화시키고 생각과 의지를 바르게 인도합니다. 그래서 눈물 앞에서는 진지해지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웃었다는 기사는 없고 울었다는 기사만 있습니다. 그 시대의 힘든 상황과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저는 한동안 영적 슬럼프에 빠져 힘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 눈에서 눈물이 메말라버린 것입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기도하면서 다시 눈물을 회복했습니다. 기도하고 찬송할 때면 눈물이 쏟아지고 조그마한 감동에도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저는 제 눈물이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제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감동하여 흘리신 눈물임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저의 눈물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제 눈물은 참회의 눈물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게을렀고, 불평이 많았고, 자만했고, 삯꾼처럼 욕심만 부렸고 위선적인 자세로 살아왔습니다. 또 ‘기도 생활과 말씀 연구’에 집중하지도 못했습니다.

둘째, 주님의 한없는 은총에 대한 감사의 눈물입니다. 어떤 일을 성취했어도 ‘내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며 내가 평안한 것도 내 의로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입술에서 “모두 다 주님의 은총”이라는 말이 눈물과 함께 나오는 사람이 진실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셋째, 이웃의 사랑에 감격해 흘리는 눈물입니다. 나는 나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해주는 교우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칠 때가 많습니다.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하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면서 웁니다. 제가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넷째, 믿음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볼 때 나오는 눈물입니다. 우리의 짧은 삶에서 죄를 물 마시듯 범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눈물이 나옵니다.

분단된 우리 조국, 갈등으로 하나 되지 못한 우리 사회, 깨져가는 가정들,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교회, 책가방이 너무 무거운 우리 자녀들, 교회 문턱마저 넘기 힘든 이 땅의 장애우와 서러운 외국인 노동자들, 허리가 휘어진 농민과 노동자들을 보면서 예수님은 내 안에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 주님만 아니라 저도 눈물이 많이 납니다”고 기도하면서 예수님께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도록 우리 모두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박광현님 참조)




[12월 17일, 목요일] 생명의 거룩한 말씀 '복음' 
<마태 1,1-17>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오늘의 묵상]
마태오 복음은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기적 이야기도 수없이 들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를 첫 장에 기록합니다.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분이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생소한 이름도 많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라 발음도 쉽지 않습니다. 마음먹고 복음을 읽어도 별다른 느낌이 없습니다. ‘첫 장부터 무슨 이름이 이렇게 많은가?’ 그런 생각마저 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씁니다. 이유는 ‘단 하나’, 예수님 때문입니다. 오직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태오 복음 첫 장의 사람들도 우리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조상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아브라함과 예수님 사이의 연결이 가능했습니다. 이렇듯 족보의 등장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알리려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구원 약속’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미 죽은 그들의 조상들에게도 이루어질 약속입니다. 이것이 마태오 복음 1장에 담긴 ‘숨은 가르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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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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