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대설 주의보)
하얀 눈으로 길이 막힌 그날은 헐거워진 허리띠였어
기댈 곳 없는 마음이었지
제 몸 갉아내는 사시나무 울음을 들으며 나도 이토록 외로울 수 있구나
낮 밤 가늠 안 되어
처마 끝 박새 찾아들기에 모로 누운 채 베갯잇 젖는 줄도 몰랐지
혼이 뚫린 모서리에서 기웃거리는 밤바람 미웠던 날은
낡은 벽에 너덜너덜 너를 못 박고
그리움도 모르는 젖은 솜이 불되어 나도 이토록 아플 수 있구나
먼먼 개 짖는 소리 귀를 세우다
안 되는 줄 알면서 너를 미워하고 말았구나
끊이지 않고 내리는 하얀 눈처럼 한 사람 사랑하기 이토록 아픈데
장부의 뜻을 세우고 문턱을 넘는 옛 임을 그렸었지
아들아 고아로 만든 서러움보다 나라 잃은 슬픔이 더 크구나
이역만리 노산공원에 만발한 매화랑
이웃이 위태함을 보이거든 목숨을 주라 하시던 할 빈 역 거사의 당당함이랑
육첩 다다미를 헤집어 고향산천을 노래하다가 붉은 아가리에 목이 뜯긴
시인의 용기도 그렸지
한 겹 한 겹 넉넉하고 헐겁게 덧씌운 마음 마음이 눈 속을 헤매게 한 그날
나는 한 사람 사랑하기 어려워 슬픈 몸부림을 끝내 지우지 못했구나
아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그리움을 넌 들 알겠니
/ 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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