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5 조회수955 추천수4 반대(0) 신고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2009년 12월 24일


루가 2, 1-14.


한 아기의 탄생을 기념하는 밤입니다. 어두운 우리의 삶에 빛으로 오신 생명이라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어둠을 체험한 뒤에 빛을 밝혔습니다. 우리가 들은 복음은 요셉이라는 나자렛의 한 서민과 그 아내 마리아에게서 아기가 태어났고,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호적등록 칙령에 따라 먼 길을 가야만 했던 이들입니다. 먼 타향 베틀레헴에서 아기는 태어났고, 아기를 영접한 이들은 밤을 새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들은 복음은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초기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새롭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새로움인지를 알리기 위해 기록된 복음서들입니다. 예수님은 권세 있는 사람들에 의해 내 휘둘리는 약한 서민을 부모로, 말구유를 요람으로, 천민으로 알려진 목자들의 영접을 받으며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복음은 천사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를 위한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초기 신앙인들이 주님으로 믿었던 예수님은 그들에게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날, 곧 성탄의 풍습이 시작되었습니다. 성탄을 전후해서 곳곳에는 기쁨을 표현하는 음악이 들리고, 화려한 장식이 보입니다. 가까운 사람 사이에 오가는 카드와 인사말, 그리고 선물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모두 2000년 전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에게 큰 기쁨이었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


어둠이 가장 길어진 동지섣달의 한밤중에 우리는 빛을 밝혀 놓고, 세상의 빛이신 분이 어두운 이 세상에 오신 사실을 기념합니다. 우리는 어둠 가운데 살아갑니다. 재물과 권력을 구원으로 착각하고 그것만을 찾아 헤매는 어둠입니다. 그것을 갖지 못하여 삶의 보람도 의미도 보지 못하며, 우리는 어둠속을 헤맵니다. 사람을 속여서라도 자기 한 사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어둠입니다. 속임을 당한 이가 비탄에 젖어 사는 어둠입니다. 헛되고 헛된 것들에 시선을 빼앗겨서 볼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어둠입니다. 국민을 대표하여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떼만 쓰고, 폭력에 호소하는 추태를 예사로 연출하는 어둠입니다.

      

이런 어둠 가운데 우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빛으로 오신 것을 기념합니다. 그분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 받으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병든 이, 가난한 이, 불행을 당한 이, 이런 모든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벌 받은 것이라고 가르치던 그 시대의 유대교였습니다. 그런 가르침을 그분은 일축하였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며, 하느님은 고치고 살리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이가 행복하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재물의 유무에 인간 행복의 잣대를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느님의 생명을 사는 자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유대교가 죄인으로 취급하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선포하는 일이었고, 유대교가 죄에 대한 벌이라고 말하던 병을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에게 하느님의 진실을 보여 주는 빛이었습니다.


오늘 성탄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가난하고 허약한 인간 조건을 당신의 것으로 하면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빈약함과 허약함 안에 하느님의 진실을 보여주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호사스런 삶에는 허세와 허영은 있어도, 인간의 진실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가난하고 허약한 이웃을 돌보아야 한다는 진실을 보지 못합니다. 높은 지위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것을 얻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마저 배신하면서 인간의 진실을 외면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 번 얻으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허세를 부리면서 자기가 섬겨야 할 이웃이라는 진실을 보지 못합니다. 이렇게 어둡고, 진실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다.”고 복음서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그분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참다운 자유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시대 종교지도자들이 가르치듯, 율법에 맹종하기 위해 주어진 인간의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맹종을 요구하는 지배자가 아니라고 믿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자기로부터 배워 자유롭게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당신 생명의 진실을 배워 자유롭게 살 것을 원하십니다. 그 진실은 자비와 사랑과 용서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이 배워야 하는 그분의 진실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으로 그것을 충분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초기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요한 14,9).


자비, 사랑, 용서는 우리의 어둠이 만드는 차별과 갈등을 그 근원에서 해소합니다. 그리고 복수라는 인간 미움의 악순환을 그 근원에서 차단합니다. 자비는 가진 이와 갖지 못한 이의 차별을 없애는 데에 나타납니다. 사랑은 버림받은 이와 버린 이의 차별을 없애는 데에 있습니다. 용서는 잘못한 이와 잘한 이가 함께 삶의 은혜로움을 체험하는 계기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차별을 없애는 노력을 하셨고, 그것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우리는 차별을 만들면서 자기의 안전과 보람을 느끼려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져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유능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신심이 두터워서, 비로소 안심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헤매는 어둠입니다. 

 

오늘의 구유는 서민의 애환 속에 차별을 없애는 나눔이 있고, 그런 나눔이 실천되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오늘 밤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입니다. 평화가 무엇인지, 또 거룩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생명이 태어난 밤입니다. 오늘 밤은 우리의 연약함이 하느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하느님의 진실이 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빈약한 여건에서 보잘것없이, 약한 한 생명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진실을 보여주는 빈약함이고 연약함입니다.


신앙인과 신앙공동체가 차별을 없애는 실천을 할 때만, 성탄은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되는’ 축일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잘 지키고 잘 바쳐서 자기 한 몸 잘 될 것을 찾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진실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웃에게 기쁨이 되는 일을 실천하는 우리 안에 하느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가 만드는 차별과 허세의 어둠 안에 머물지 말자는 오늘 축일의 메시지입니다. 하느님 생명의 빛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빛이 우리 안에 살아계셔서 “그 빛의 자녀가 되도록”(요한 12,36) 해야 할 것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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