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펌 - (103) 제라늄 한 포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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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순의 | 작성일2009-12-30 | 조회수37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6955 작성일 2004-04-29 오후 2:46:12
2004년4월29일 목요일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한자 기념일 ㅡ사도행전8,26-40;요한6,44-51ㅡ
(103) 제라늄 한 포기 이순의
ㅡ정담ㅡ 갔다. 귀여운 아가 둘이랑 새댁이 이사를 갔다. 여러 날을 마음 둘 곳이 없어서 힘들더니 기어이 날자가 되어서 홀연히 떠나버렸다. 서울 삶이 늘 그렇더라. 만나면 사귀기 어렵고 정들면 헤어지고 사노라면 바빠서 또 멀어지고! 다행히 멀리는 가지 않아서 따라가 보았다. 새로 지은 집이라서 주차장도 있고 깨끗하고 넓고 환하고 좋았다. 사람의 관계가 무엇인지?! 교우네 부동산을 통해서 집을 구한 덕택에 우리 옆집에 살았던 새댁이라는 인사 값을 해 주시느라고 복비를 10만원씩이나 깎아주는 덕을 보았다. 내게 이익이 되는 돈은 아니지만 그 형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늘 내가 집을 구할 때도 그 형님을 통해서 해 왔고, 그 덕택으로 복비를 반 토막만 받 으셨는데 단지 내 옆집에 살았다는 이유로 그렇게 해 주시니 너무 고맙지 않은가?! 새댁은 생각했던 돈 보다 적은 지출에 좋아 했지만 모두가 하느님 때문에 생기는 이익 이라고 말을 해 줬다. 며칠 동안 주님의 요구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어느 만큼의 외로움을 요구하시는 것인지 응답해 보려고 무척 깊은 묵상에 들 어갔다. 모든 관계를 청산 하는데 2년을 소비했고, 다니던 성당도 쉬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 었고, 건강의 악화로 칩거에 들게 하시더니, 이제는 유일한 방문지인 새댁마저 이사 를 가고, 두 달 후면 무언으로도 정신적 사상의 동반자였던 친구도 먼 이국으로 떠나 게 된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침묵이 무엇일까? 그분이 요구하시는 경외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라는 말인가? 고독감의 한계는 언제까지 지속 될 것인가? 나의 응답도 아직은 과거를 돌이킬 마음이 없는걸 보면 아버지의 요구가 끝나지 않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만남의 방에서 열린 웃음주머니를 주체하지 못 하고 쏟아내던 사람의 즐거움을 되찾 을 날이 언제인지는 나도 모른다. 아직 나의 마음이 싫다고 한다. 아직은 싫다.
돌아보면 믿었던 관계도 나의 수 없는 진실들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자신의 솔직한 마 음은 결코 보이려 하지 않았다는 섭섭함도 싫고, 늘 외골수로 한결 같은 길을 고집하 는 나의 성향을 잘 알고 있다고 자청하던 가까운 관계 안에서 조차 저울질 당했다는 것도 아직은 되찾고 싶지 않은 웃음들이다. 그렇다고 그 섭섭함을 한 번도 내색 한 적 이 없다. 그 관계라는 그릇의 모양에 숨구멍을 조여 매는 것 같은 끈기로 침묵할 줄 아 는 사람도 나다. 내가 모르지 않는다는 것,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추구하지 않고 송두리째 비 워버릴 수 있는 냉혹한 만족을 선택한다. 비울 줄 안다는 것은 구차해지지 않는 보석 이다. 그러므로 감히 누가 나에게 비움을 탓하지 못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비움이라 는 진공관이 나를 지탱하는 단단한 골격이기 때문이다. 비움은 평온한 성찰이며 갈등이다. 새댁의 새로운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표현을 절제하느라고 씩씩하기는 했지만 외로 움이 엄습하는 마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참으로 순수하게 잘 따라주고 수용하며 개방적이었던 새댁과 아이들이 아니던가?! 요즘 젊은이들처럼 구세대라고 외면하지도 않고, 경험의 진솔함을 인정해 줄줄 아는 그런 너그러운 새댁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내 아들 다음으로 "나는 언니의 두 번째 독자라는 것을 너무 감사해요."라며 매일의 묵상을 읽어 준 측근이 아니던가?! 아들은 그저 아기 때부터 읽어 온 엄마 글이라서 읽어주는 것으로 끝이지만 새댁은 각 종 언어를 동원해서 느낌을 전달해 주었다. 이사 갈 날이 정해지면서 언니 글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고 모아놓은 봉투째 지니고 있다가 이사 가기 전날까지 돌려주지 않았었다. "언니 글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돌려드릴 수가 없었어요. 분량이 엄청 나서 한 번에 읽으라고 주셨으면 도저히 못 읽을 글이라는 걸 알게 되더라구요. 언니 가 매일 저에게 독서를 시키신 공헌이 이렇게 많았다고 생각하면서 또 한 번 감사했어 요. 제목을 쭉 흩어 보면서 다시 읽고 싶은 것만 골라서 읽었는데요. 제목들이 주는 메 세지가 정말 새롭게 느껴져서 언니가 참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언니의 기억이 제 인생에 오래오래 남을 거예요. 무엇보다 힘들어지면 언니를 생각하면서 용기를 얻 을 것 같아요. 언니가 아들과 아저씨한테 하시는 한결같은 모습은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것들이잖아요. 그 환경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짜내서 하시잖아요. 불평하거 나 모자라지 않게 항상 넘치는 무엇인가를 짜내서 아들도 키우고 아저씨께도 하시잖 아요. 저는 그걸 항상 못 잊을 거예요. 우리 신랑은 그런 말만 해도 좋아하는데 진짜 로 받고 사시는 분은 어떻겠어요?!"
새댁도 이사 가면서 하고 싶은 게 많았었다. 친정어머니께서 농사지어 주신 푸성귀들을 나누면서 고기를 끊어 오겠다는 것이다. 극구 말렸다. 내가 한약을 먹느라고 고기를 먹지 않은 탓도 있지만 새댁이 내 곁에 살 면서 준 기쁨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너네 아그들이 나에게는 더 꽃이었다. 너네 딸내미는 할머니는 몰라봐도 내 노래 소 리는 알아듣지 않더냐?! 너네 아들은 내게 붙어서 비비고 엉기고 놀아 달라고 아양 떨 고 공부시키면 꾀부리고, 생명이 자라면서 보여주는 모든 신비를 다 보여 주었는데 고 기는 무슨 고기냐?! 어머니가 무 농약으로 지은 푸성귀는 내가 좋아해서 달게 먹는데 고기는 그만 둬라. 나에게는 이제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어. 새로 오시는 분들은 정 들 기 전에 내가 이사를 갈 것 같다. 그리고 중년의 부부가 오신다 하니 조무래기 아기들 도 없으신 것 같고, 아마 삶의 터전에 나가서 생활하시는 시간이 더 많으신 분들 같더 라. 그러니 너희들의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거야. 오늘밤에 마지막으로 너랑 나눌 수 있는 반찬이 있을 것 같다. 어서 주라. 금방 조물락 꺼리면 맛있게 먹을 것 같다. 네 마 음이 소중했어. 언제나 순수한 너네 가정이 보기에 좋았고 너 같이 심성 고운 이웃을 만나서 축복이었어! 고맙다. 정말 고마워! " 그리고 마지막 밤에 푸성귀로 이것저것 겉절이를 해서 최후의 만찬을 나누어 먹었다. 언니 곁에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운다고 야단법석을 떠느라고 얼마 전에는 난리방통 을 만들더니 그래도 처음 담가 본 김치가 너무나 달게 잘 담가졌었다. 그런 새댁은 김 치를 담가 본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 했었다. "언니 저는 그냥 김치를 먹었는데 이제는 그동안 김치 보내주신 어머니께도 감사한 마 음이 들구요. 언니한테도 받아만 먹은 게 어떤 노력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귀여움이 제 몸에서 나는 새댁이 갔다. 이사를 가버렸다. 나는 아직도 주님의 침묵에 무엇을 응답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그러나 그 모름의 이면에는 분명한 주님의 계획이 자리이동 중이라고 믿는다. 이루심은 언제나 나의 뜻 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내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그저 이 순간에도 순리에 순응 할 뿐이다.
쓸쓸한 허전함에 심장을 쑤시며 귀가하는 길목에서 화분에 담긴 <제라늄> 한 포기 를 샀다. 무겁게 들고 와서 발코니에 놓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부터 당신을 사랑할거예요." 그 홍꽃이 곱다. 참으로 곱다. 이사 다니는 번거로움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던 화초를 한 포기도 키우지 못했 는데.......!!!!!!
ㅡ그래서 필립보는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내시 는 "누가 나에게 설명해 주어야 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하고 대답하며 필립보 더러 올라와 곁에 앉으라고 하였다. 사도행전8,30-31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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