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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웬 소금 열 포대?> - 서영남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3 조회수554 추천수1 반대(0) 신고
 
웬 소금 열 포대?
[민들레국수집 이야기]
 
2009년 12월 27일 (일) 17:53:59 서영남 syepeter@gmail.com
 

 

   
▲ 사진/김용길

 

십여 년 전입니다. 한여름이었습니다. 광호(가명)씨를 금호동 평화의 집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의정부교도소를 출소했는데 갈 곳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원한 콩국수를 대접했습니다. 몇 달을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떠났습니다.

인천에서 출소한 형제들과 함께 지내고 있을 때 광호씨가 말 못하는 상아 엄마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여인숙에서 지내다가 방세를 내지 못해서 빈 몸으로 도망을 나왔다고 합니다. 조그만 단칸방을 하나 얻어드렸습니다. 살림살이도 챙겨드렸습니다. 고아원에 있던 상아도 찾아왔습니다.

얼마 후에 광호씨의 아이가 생겼습니다. 벽에 “가와만사성”이라고 틀린 글자지만 한글로 써서 붙여놓았습니다. 동아가 태어나자 광호씨는 딸이 너무 예뻐서 막노동을 하러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광호씨가 엄마 대신 업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부부싸움이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상아 엄마는 상아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광호씨는 동아를 데리고 살아보려고 애를 쓰다가 어쩔 수 없이 딸을 보육원에 맡겼습니다.

딸과 함께 살아보려고 돈을 모아보려고 했지만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돈을 모으기는커녕 끼니도 때울 길이 없었습니다. 돈이 조금 있으면 하루치 방세를 내고 하룻밤을 여인숙에서 자고 돈이 없으면 노숙을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월세 십만 원짜리 방을 구해주었습니다. 보증금은 백만 원인데 일해서 월세만이라도 내고 살면서 돈을 모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노동은 참으로 고달픈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한 달에 십만 원도 벌지 못했습니다. 몇 달을 월세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의욕을 잃고 잠만 잡니다.

신안에서 보내온 소금이 열 포대..

지난 해 11월에 광호씨를 겨울을 보낼 겸 봉화로 내려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광호씨는 일주일을 심심산골에서 버티다가 방랑의 길을 떠났습니다. 돈 한 푼 없는데 걸어서 먼 길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안동에서 농장에 머물며 보름 정도 일하다가 또 그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돈도 받지 못하고 대구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전라남도 목포까지 갔습니다. 그곳에서 직업소개소를 찾아서 결국 신안 염전으로 갔습니다. 열심히 돈 모아서 보육원에 있는 딸을 찾아 함께 살아보려고 이를 악물고 일을 했습니다.

지난 11월에 웬 소금이 열 포대 민들레국수집에 택배로 왔습니다. 어느 분이 보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김장할 때 쓰려고 창고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얼마 후 신안에서 광호씨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염전에서 제일 좋은 소금이라고 합니다. 밑에 구멍이 뚫린 항아리에 소금을 담아두면 간수가 잘 빠진 고급 소금이 된다고 합니다. 김장할 때 쓰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염전에 급한 일을 도와주고 11월 말에는 돈을 받아서 올라와서 인사드리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

며칠 전에 영등포교도소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광호씨 편지입니다. 급히 읽어보니 염전에서 한 해 동안 죽을 고생을 하면서 일했는데 직업소개소 비용과 이것저것 다 제하고 겨우 97만원을 손에 쥐었다고 합니다. 그 돈을 가지고 민들레국수집에 오기가 창피해서 서울 변두리에 두 달 치 선불을 내고 쪽방을 얻었답니다. 일자리를 찾은 다음에 딸을 만나려고 했는데 그만 경찰관에게 검문을 당했답니다. 몇 년 전에 대포통장 만들어주고 통장 하나에 오만 원씩 열 개를 해 주고 받아썼는데 그것이 벌금 삼백만원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벌금 낼 길은 없고 그냥 몸으로 때우고 있다고 합니다. 보육원에 있는 딸이 보고 싶다고 합니다. 미안하다고 합니다.

24일이 목요일입니다. 국수집이 쉬는 날입니다. 시간을 내어서 베로니카와 함께 영등포교도소에 장소외 접견 신청을 해서 특별 면회를 했습니다. 광호씨가 일 년 사이에 머리가 반백이 되었습니다. 이제 마흔 셋이라고 합니다. 딸이 보고 싶지 않은지 물어보았습니다. 보고 싶지만 돈도 없고 방도 없고 일거리조차 없어 어쩔 수가 없다고 합니다. 광호씨에게 성탄 선물을 드렸습니다. 다음 목요일 민들레국수집이 쉬는 날인 12월 31일에 광호씨 남은 벌금을 대신 내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단칸방을 마련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딸이 이제 보육원에서 나이 때문에 고아원으로 옮겨야하는데 이제는 딸을 찾아서 제대로 아빠노릇을 해 보자고 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항아리 소금 열 포대를 받고 감동해서 광호씨에게 전해 주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구매물을 무엇을 넣어주면 좋겠는지 물어보았더니 훈제 닭고기라고 합니다. 함께 지내는 분이 네 분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민원실에서 영치금과 음식을 충분히 넣어드렸습니다.

오늘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보증금 백만 원 정도의 월세 방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힘이 듭니다. 그런데 빌라 반지하지만 마음에 드는 방을 구했습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세 십오만 원입니다. 이제는 31일까지 살림을 살 수 있도록 살림살이를 마련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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