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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그것을 못하면 내일 그것을 할 수 있는가?> - 정중규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08 조회수449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그것을 못하면 내일 그것을 할 수 있는가"
[정중규 칼럼]- 2010년,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요구되는 때
 
2010년 01월 07일 (목) 00:12:26 정중규 mugeoul@hanmail.net
 

새해맞이의 호된 신고식이라도 치르듯이 폭설에다 한파까지 온 나라를 덮쳐 그야말로 엄동설한의 신년벽두이다. 올 겨울 눈 구경을 못했던 대구 지역에도 폭설은 아니지만 삼라만상을 부드러운 융단처럼 덮을 만큼의 첫 눈이 내려 백설천지로 만들었다.

자연날씨도 혹한이지만 서민들에겐 생활날씨가 더 걱정이다. 새해 벽두부터 꿈틀대며 오르는 물가와 대출금리, 이미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고용시장과 대량실업 사태 등, 5% 경제성장률의 장밋빛 전망이 무색할 정도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혹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MB가 올인하는 4대강 유역과 세종시 외 모든 곳엔 ‘불경기의 혹한’만 불까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 Mount-Horeb

4대강 유역과 세종시 외에는 모든 곳이 혹한의 불경기

길에 쌓인 눈 때문에 온종일 꼼짝 못하고 있다 문뜩 창 밖 풍경을 보니 설원 너머 저녁노을이 곱기만 하다. 형형색색의 구름들이 빈센트 반 고흐의 툭툭 던지듯 하는 붓 터치로 굵은 흔적을 하늘 곳곳에 남기며 태양을 중심으로 하여 황홀한 군무(群舞)를 추고 있다. 노을 앞에 설 때마다, 호렙 산 동굴 어귀로 나와 겉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야훼 하느님을 만나는 예언자 엘리야가 생각난다.

갈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 집단을 단칼에 무너뜨리고 기고만장하다 포악한 왕비 이제벨의 복수 언질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 사흘밤낮을 달아났던 엘리야. 동굴 속에 숨어서 하느님께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했던 엘리야를 바깥으로 불러내신 그분은 폭풍도 지진도 화염도 모두 지나간 뒤 미풍 속에서 조용하고도 부드럽게 당신을 드러내신다. 기운 차린 엘리야는 다시 세상 속 예언자로 돌아간다. 읽을 때마다 가슴에 불붙는 감동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갈멜에서 호렙으로!’ 이는 성숙한 신앙으로 가는 구원여정이다. 그렇게 침묵과 예언은 하나로 통한다. 그분 안에 온전히 잠겨드는 참된 침묵으로 예언의 말씀이 내려와 불꽃처럼 일어나는 까닭이다. 예언자의 외침이 무서운 것도 자신의 소리를 전혀 지니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소리만으로 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침묵의 반향인 까닭이다.

용산참사가 사회와 교회에 던지는 시대적 징표 깨달아야

지난 한 해 용산참사 현장이 그러했다. 거기에는 갇힌 생명의 처절한 몸부림이, 죽음도 불사하는 예언자의 외침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야단법석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의 외침과도 같이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피가 하늘에 사무쳐 닿고, 가난한 이들의 소리가 하느님 말씀(Vox Populi, Vox Dei)이 되어 세상을 향해 퍼져갔던 것이다.

용산참사는 우발적 참사가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비인간적 구조악의 필연적 산물이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이젠 달라져야함을, 이젠 돌려세워야함을, 이젠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함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간절히 호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도 않고, 무엇보다 그 사건이 주는 메시지와 의미조차 외면당한 채, MB정권에 의해 단순히 보상문제로 ‘만사 OK!’ 되는 식으로 넘어갈 것만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지난 한 해가 용산참사 현장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온 몸으로 앓았던 시간이었다면 올 한 해는 용산참사의 의미를 성찰하고 가슴으로 앓으며 우리 사회의 틀을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짜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용산참사가 던지는 시대적 징표를 사회와 교회가 깨달아 가슴에 새길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의 인간화는 그만큼 앞당겨 실현될 수 있으리라.

   
▲ Hope-2. George Frederic Watts

인간을 사랑하라 끝없이 연민하라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라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로 유명한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는 <일상의 신학>에서 주문한다.

인간을 사랑하라. 끝없이 연민하라.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라. 그것이 지구에서 인간들이 진화해가는 방식이니까. 예수가 자기 시대의 표징을 읽었듯이 우리의 신앙체험은 그리 멀리 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 시대의 역사 안에서 예수가 그의 몸과 마음으로 느꼈던 연대의식과 그 연민의 정으로 나의 신앙감각(sensus fidei)은 그분께로 열려져 있어야 한다. 언제든지 나의 열려진 신앙감각을 통해 당신을 전달하시는 그분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하기를, 과연 그러하기를! “한 해의 가장 큰 행복은 한 해의 마지막에서 그 해의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자신을 느낄 때이다.”라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 우리 모두가 예수께서 지니셨던 인간에 대한 연대의식과 연민의 정을 본 마음으로 삼아 새롭게 태어나려 노력할 때, 비로소 이 새해도 새해라 할 수 있으리라.

오늘 그것을 못하면 내일 그것을 할 수 있는가

2010년은 경술국치 100년, 한국전쟁 발발 60년, 4·19혁명 50년, 광주민중항쟁 30년 등 현대사의 굵은 매듭에 여러 겹으로 연결 지어진 뜻 깊은 해다. 정치적으로도 집권 3년차 MB의 정권재창출 작업이 더욱 노골화될 것이고, 풀뿌리민주주의를 다지는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등 민주주의에 있어 어느 때보다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요구되는 위기요 기회인 때다. 하지만 로마 신화의 두 얼굴 가진 신 ‘야누스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Januarius에서 따온 1월처럼 ‘위기와 기회’는 한 몸으로, 노력 여하에 따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토마스 아 켐피스의 “지금이야말로 일할 때다. 지금이야말로 싸울 때다. 지금이야말로 나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 때다. 오늘 그것을 못하면 내일 그것을 할 수 있는가.”라는 말은 바로 우리를 재촉하고 있지 않은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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