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
II. 삼위일체
1.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C.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창세 1,27)
지금까지 ‘사람’이 하느님의 삼위일체를 닮아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위의 구절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셨다. 당신의 모습으로 ‘그’를 창조하였는데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은 하느님께서 한 몸이신 것처럼 사람도 하나의 단수가 됩니다. 그런데 곧 이어 사람을 남자와 여자의 복수로 창조하셨는데 그 역시 당신의 모습을 본떠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이신 것처럼 영과 영혼과 육체도 삼위일체이고 남자와 여자도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는 것을 살펴봅시다.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 하나를 빼내시고 그 자리를 살로 메우셨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창세 1,21-24)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여자의 고향은 따라서 남자의 ‘품’입니다. 요한 1,18절에서 말씀이 아버지의 어디에 있었다고 합니까? 바로 ‘품’을 향하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남자는 성부이고 여자는 성자입니다. 왜냐하면 여자의 고향이 남자의 가슴인 것처럼 성자의 고향은 아버지의 가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했던 것입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품을 향하여 계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요한 1,18)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요한 13,23)
이 모습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를 연상하게 합니다. 말씀은 아버지의 품을 향하여(into) 있었다고 쓰면서도(요한 1,18) 요한 자신은 예수님의 품 안에(in) 있었다고 쓰고 있습니다(요한 13,23). 그리고 당신 품 안에 있는 제자를 사랑(agape)하셨다고 합니다. 요한은 ‘가슴, 품’(ko,lpoj)이란 단어를 단 이 두 구절에만 사용함으로써 마치 아드님께서 아버지의 품에 계신 것처럼 자신도 예수님의 품에 있음으로써 삼위일체의 모습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의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 됨의 힘이 바로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요한 3,34-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고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께서 아드님께 성령님을 무한정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곧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받은 아들은 자신의 말을 하지 않고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그래야만 아버지와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버리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사랑과 함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들과 아버지는 성령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바로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요한 10,17-18)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아버지의 명령을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따르기 때문에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아들은 자신을 온전히 비웠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 비움을 우리는 ‘Kenosis’ 라고 합니다.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받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러나 받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워야 하는데 그것이 Kenosis입니다. 또 주기 때문에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이 Kenosis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이 Kenosis 안에서 한 몸을 이루십니다. 즉, 아버지는 성령님께, 성령님은 아드님께, 아드님은 다시 성령님께, 성령님은 다시 아버지께 신적 본질을 주고받음으로써 세 분이 한 신적 본질을 공유하게 되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Kenosis)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립 2,6-8)
그리스도와 아버지께서 하나 되는 비밀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지만 자신을 비우시고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비워야만 일치의 성령님께서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