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이티 희생자들과 나는 어떻게 다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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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연 | 작성일2010-01-17 | 조회수40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이이티 희생자들과 나는 어떻게 다른가?>
중남미 국가 아이티에서 지진으로 10만 명이 아니라 20만 명 가까이 희생되었다 한다. 인구 900만 명 가운데 삼분의 일인 300만 명이 이재민이 되었다 한다. 우리가 직접 당하지 않았지만 같은 사람으로서 무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만일 7도 강진이 우리나라 서울, 대도시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84년부턴가 우리나라 건물이 내진 설계로 되어 있어서 그 정도로 큰 피해를 입지 않으리라 여길지 모르지만, 그 참상은 아이티 못지않으리라. 그런데도 나는, 우리는 아이티 참상을 그저 뉴스거리로 접하고 있다. 나와 내 식구와 우리 국민이 피해당사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냥 적당히 넘기고 있다. 왜 그럴까? 나는 네가 아니고, 우리는 너희가 아니라 여기기 때문일까?. 사람도 물질, 몸으로 되어 있고 시간과 공간에 갇혀 있어서 아이티 희생자들과 나, 우리가 한 몸이라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결국 모든 사람, 온 인류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어서 미국도, 한국도, 모든 나라가 아이티에 구호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결국, 조국과 민족이 하나이듯이, 인류는 하나다. 한 몸이다. 인류는 한 공동체다. 모든 사람이 인류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너와 나는 한 몸이다. 우리 모두 한 몸이다. 그런 모든 사람 온 인류가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함께사는세상을 이룩하는 것이 사람이 존재하고 사는 이유요 목표가 아닐까? (그리스도교 신자인 나, 하느님이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다는 나, 나로서 아이티 참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세기적인 신학자 칼 라너가 쓴 ‘죽음의 신학’이라는 책을 번역한 나로서도 잘 모르겠으니 불교 믿는 분, 철학공부 하는 분, 구도자인 어떤 분이나 아시는 분 이메일로 가르침 좀 주시기 바란다.] 전쟁이나 굶주림으로 인한 떼죽음은 사람 탓, 우리 탓이라 치고, 자연재해로 인한 떼죽음은 하느님 탓일까. 하느님이라는 분의 눈으로 볼 때에는 사람이 태어나 희로애락을 다 겪고 나서 천수를 다 누리고 나서 숨길을 거두면서 죽거나 총에 맞아 순식간에 죽거나 교통사고로 순식간에 죽거나 자연재해로 순식간에 죽거나 별반 차이가 없을까. [내 개인으로 생각할 때에는 순식간에 죽는 그런 죽음이 암이나 중병으로 오래 고생하다 죽는 죽음보다 더 편할 것 같다.] 개인의 죽음의 총합도 시차가 있을 뿐 떼죽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존철학자들의 말마따나 사람이나 모든 생물은 무작정 살고 보자는 ‘삶의 의지’에 떠밀려 죽는 순간까지 발버둥치고 있을까. 사는 게 무엇이고, 죽는 게 무엇일까. 죽고 나면 아주 없어질까.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를 이어갈까. 몸 아닌 영으로 존재하는 방식도 있을까. 영으로 변한 몸도 있을까. 양심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산 사람이나 양심을 어기면서 아무렇게나 산 사람이나 죽고 나면 똑같이 무[無]로 돌아가고 말까. 질량불변의 법칙에 따라서 혹시 우리 영[靈, 의식, 자각]도 몸과 더불어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게 아닐까.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라?” 죽음이 억울하지 않으려면 마땅한 해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해답 아시는 분 이메일 답장으로 가르침 좀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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