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8일 월요일[(녹) 연중 제2주간 월요일(일치 주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1월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단식은 절제의 수단입니다. 단식한다고 사람을 괴롭히고 이웃을 성가시게 한다면 취지가 무색해집니다. 사람을 위한 단식입니다. 사랑을 나누려는 ‘절제의 훈련’입니다. 백 번을 단식해도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없다면 그냥 ‘굶는 행위’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 단식으로는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모질고 독한 마음으로 단식한다면 ‘안 하는’ 것만 못합니다. 그렇게 단식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의무감에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단식이라면 어떻게 은총이 함께할는지요? 주님께서도 그런 단식은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인데, 그때 단식하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예수님과 연관된 단식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단식은 목적이 아닙니다. 은총을 얻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바리사이들도 축복을 원했기에 단식에 매달렸습니다. 완벽한 단식은 부정을 씻고 죄를 없앤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실제로 단식을 통한 절제는 율법 준수를 도와줍니다. 그러기에 단식에 대한 규정이 많아졌고,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변해 갔던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선입관 없이’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본질인 ‘주님과 맺는 관계’를 언제나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단식은 ‘그다음’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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