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it lawful to do good on the sabbath rather than to do evil,
to save life rather than to destroy it?
(Mk.3.4)
제1독서 사무엘 상 17,32-33.37.40-51
복음 마르코 3,1-6
언젠가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을 가장 빨리 황폐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지요. 꽃과 나무를 꺾어버리면 될까요? 아니면 땅을 파헤쳐서 더 이상 꽃과 나무가 자라지 못하게 하면 될까요? 아니면 정원에 불을 질러서 몽땅 태워버리면 어떨까요?
그러나 이 방법으로 꽃이나 나무를 망칠 수는 있겠지만, 정원 자체를 황폐하게 만드는 방법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정원을 가장 황폐하게 만드는 길은 아예 정원에 무관심하면 된다고 하네요. 돌보지 않고 무관심하게 그대로 두면 정원은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이내 폐허가 된답니다.
하긴 저 역시 그런 체험이 있습니다. 갑곶성지에 있을 때, 강의 등으로 바빠서 성지의 화단에 무관심 했었던 때가 있었지요. 그런데 얼마 뒤 잡초만 무성한 황폐한 화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전의 화단으로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요.
어쩌면 인간관계 안에서도 이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은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지요. 그 무관심이 사랑의 정원을 황폐하게 만들어, 다시 정상적으로 만드는데 더욱 더 힘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지 말 것을 당신의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치유의 은총을 베풀려고 하자,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사랑의 실천에 있어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해지더라도 사랑의 실천이 가장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 후에 사람들의 반대를 받을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무관심으로 대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을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바리사이들의 대응이 인상 깊습니다. 바리사이들은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합니다. 사실 바리사이와 헤로데 당원들은 서로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견을 공유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 무관심을 갖게 되는 순간, 그들은 악한 마음을 서로 공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종종 남의 시선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걱정하면서 무관심으로 일관하곤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 행동을 합리화시키면서 또 다른 악을 행하는 사람들의 뜻에 동조하곤 합니다.
이런 우리들이 바로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이 바로 나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악을 미워하고 선을 실천하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벽돌이 쌓인다고 집이 되지 않듯이 시간이 쌓인다고 삶이 만들어지지 않는다.(에리스 로럴드 미리에리)
나의 등을 보는 마음(‘행복한 동행’ 중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정치가가 있었다. 그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겸손하고 배려 깊은 마음에 감동을 받았고 그의 인기 또한 나날이 높아졌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나중에 자라면 그 정치가처럼 되겠다고 얘기할 정도였다.
어느 날, 신문기자가 정치가를 찾아왔다. 성공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정치가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비결같은 건 없어요. 그저 나의 등을 보는 마음으로 살아왔을 뿐입니다.”
기자가 등을 보는 마음이 무엇이냐고 되묻자 정치가는 이렇게 답했다.
“기자님, 자신의 등을 한 번 보세요. 다른 사람의 등은 잘 보이지만 자신의 등은 쉽게 볼 수 없죠.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결점은 잘 보지만 스스로의 결점은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누구에게나 결점은 있습니다. 그렇기에 타인의 단점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을 때마다 저는 등을 보는 마음으로 참아 냈지요.”
우리는 마음속에 두 개의 잣대를 가지고 있다. 타인에게는 1mm까지 정교하게 표시된 잣대를 들이대며 잘잘못을 따지지만 스스로에게는 어물쩍 넘기고 만다. 거꾸로, 타인에게 향했던 잣대를 나에게 드리우자.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Destiny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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