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월 31일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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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0-01-30 | 조회수697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1월 31일 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 루카 4,21-30
“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인생의 허전함>
오늘 저녁 선배 신부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편이 애매해서 택시를 탔습니다. 개인 택시였는데, 기사님은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셨습니다.
꽤 무료하셨던지 제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요즘 통 매상이 안 오른다는 말씀, 오늘 나온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는데, 6,000원밖에 못 벌었다는 말씀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택시가 아니기에 사납금에 쫒기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는 말씀에 제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이런 요지의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최근 막내딸이 취직을 하게 되서 자식 농사를 다 끝냈다. 아들 하나 딸 둘 다 대학 나오고, 다들 일류 기업체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월급 받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막내딸이 마지막으로 취직하고 나서, 섭섭한 일이 한 가지 생겼는데, 가족들이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인도 가게를 운영하다보니 거기에 매여서 정신이 없고, 아들딸들도 다 이제 월급타고 제 몫을 하니 기쁘긴 한데, “아빠, 용돈 좀 올려줘요”, “아버지, 신발이 다 떨어졌는데요.” 이런 말을 못 들으니 마음이 너무도 허전하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다들 바쁜 관계로 자신은 완전히 왕따 취급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아직까지는 가장 노릇을 하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뭔가 역할을 하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것이 그렇게 슬프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별 도움이 안 된다”, “왕따 당했다”는 말처럼 섭섭하고 슬픈 말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왕따 당한다는 것은 필설로 표현 못할 서러움과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동반합니다.
오늘 루가 복음사가는 자기 고향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배척당하는 예수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성장한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서 당한 따돌림과 거절 앞에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소외감은 참으로 컸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저지른 과오 중에 가장 큰 과오는 가장 값진 보물이 자신들 손 안으로 굴러들어왔음에도 그 보물을 절벽 밑으로 멀리 던져버린 행위였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고대해왔던 메시아, 자신들을 죄와 악에서 구해줄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코앞에 나타났음에도 그분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형에 처한 사람들이 바로 유다인들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인식하지 못한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들 각자 마음에 존재하고 있던 거짓 메시아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유다인들은 자신들 입맛에 맞는 가짜 메시아를 각자 안에 간직하고 있었기에 참 메시아 예수님께서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몰라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극히 현실적 욕구나 사리사욕만을 끊임없이 충족시켜주는 해결사 메시아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 앞에 나타난 메시아는 그들이 바라던 메시아가 아니었기에 모두들 예수님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제 안에도 역시 마음 깊은 곳에 참 메시아를 몰라보게 시야를 가로막는 거짓 메시아가 존재함을 깨닫습니다.
서원을 통해 이제 오직 하느님 영광만을 위해 살기로 서약한 수도자이면서도 2000년 전 유다 백성들과 별반 다름없이 나만의 만사형통과 나만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시는 가짜 메시아를 따라가고 있음을 깊이 반성합니다.
이웃들 고통 그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비정함을 깊이 반성합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 탄생을 통해 이미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와있지만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아둔함을 깊이 반성합니다.
법정 스님 말씀처럼 “모든 종교의 핵심은 깨어있는 맑은 영혼”입니다. 언제나 깨어있는 마음, 맑은 영혼 상태로 지금 이 시대 어디에 예수님이 현존하시는지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이번 한주가 되길 바랍니다.
무엇이 본질적이고 무엇이 부수적인지를 식별하면서 언제나 겸손하게 새 출발하는 갓 출가한 수행자 마음으로 세상 앞에 서는 우리이길 빕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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