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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음란함의 죄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1-31 조회수563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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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음란함의 죄
( 영혼의 성약(聖藥) / 가톨릭출판사 )


사음죄(邪淫罪:음란한 죄)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음란한 짓은 착한 일을 할 힘을 빼앗는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기운 때문에 당대의 호걸로 불리웠던 삼손은 불결한 사랑에 빠져 애인 데릴라의 노리갯감이 되어버렸다. 그는 세 번이나 그녀의 꾐에 빠져 마침내 원수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음란한 짓은 머리를 둔하게 한다. 임금들 중에 가장 지혜로웠던 솔로몬왕이 이교의 여성에게 매혹되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은혜를 자기에게 주신 하느님을 멀리하고 결국 이교에 빠지고 말았다.

음란한 짓은 마음을 썩게 한다. 임금 가운데 가장 열렬한 그리스도 신자였던 영국의 헨리 8세는 앤 볼렌과 불결한 관계를 맺고 아내를 버려 가톨릭 교회를 배반하고 영국을 이교 나라로 만든 뒤에 파문을 받아 죽고 말았다.

음란한 짓은 신앙을 잃어버리게 한다. 신자들 중에 신앙이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개 사음죄 때문일 것이다. 사실 젊은이들이 기도를 잘 하지 않고, 교회에서 하는 성사를 등한히 하고 차츰 성사도 잘 안보며 성당에서 멀어지는 것은 대개 음탕한 말, 소설, 영화에 빠지고, 나쁜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여, 가서는 안 될 집에도 드나들고, 사귀지 말아야 할 여성과도 사귀어 쾌락과 방탕한 생활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다.

여러 해 전에 내가 잘 아는 의사를 만났다. 나는 그가 신자의 본분을 잘 지키지 않으므로 바른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했다. 그는 “나를 결혼시켜 주시오. 그러면 좋은 신자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자신이 신앙을 잃어버리게 된 까닭은 사음 때문이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다.
이 밖에 음란한 짓은 가장 잔혹한 죄를 범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사음은 건강을 해치고 체력을 떨어뜨려 목숨을 짧게 만든다. 세상에 사음으로 인해 허약해진 사람, 병자, 애늙은이, 폐병환자, 정신병자, 반신불수, 임질, 매독에 걸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버림 받는 아이들과 고아원이 많아지는 것 또한 사음이 가져오는 악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처녀나 과부가 아기를 낳아 눌러 죽이는 무서운 죄악도 사음의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음은 피를 빨아 먹는 박쥐와 같으니, 사람의 피를 빨아 기운을 없애고 목숨을 앞당긴다.

음란한 짓은 촛불과 같다. 타는 초는 끄지 않으면 다 타고 마는 것처럼 음란한 짓도 악습을 고치지 않으면 사람의 목숨을 모조리 녹여버리고 만다. 젊은이들 중에 이런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건강과 명예와 쾌활과 순결을 잃어 보통 사람보다 빨리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은 장미꽃의 향기를 맡는 줄로 알지만 거기에 가시와 독이 있는 줄 모른다. 이것은 사음의 쾌락에 빠진 사람들이 밟는 길과 같다. 한창 나이의 젊은 이들이 사음의 장미꽃, 마음을 끄는 그 향기에 도취하여 “사랑! 사랑!”을 부르며 그 꽃향기에 질식하여 넘어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과연 불행
하다! 그 애욕, 아니 그 사욕은 머지않아 자신을 죽이는 독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니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나는 사욕을 탐하고 있는 건장한 젊은이 한 사람을 알았다. 그는 17 살때 무서운 공포증에 고민하다가 죽었다. 그의 죽음을 본 사람은 누구나 겁에 질렸다. 그의 눈이 얼마나 푹 꺼졌든지 친척들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흉측했다. 방에 들어간 사람마다 고개를 돌리며 “이렇게 흉측하게 죽은 얼굴을 처음 본다.”며 놀랐다.

사음죄에 빠진 또 한 젊은이도 그처럼 참혹하게 죽었다. 시체는 퉁퉁부어 고약한 냄새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래서 친구들 중에 용감한 사람들이 예정보다 빨리 장례를 치르려고 시신을 옮기려 했으나 도저히 악취를 견디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할 수 없이 소달구지로 시신을 운반했다. 그가 죽었던 방은 두서너 차례 소독하지 않고는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악취가 배어 있었다.

또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불결한 죄를 자주 범한 어느 여성이 보기에는 열심한 신자처럼 잘 죽은 것 같았다. 어머니와 동생은 깨끗한 옷을 입히고 아름다운 꽃으로 시체를 잘 꾸몄다. 최후 고별식에 모인 친구들이 관례대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출관예절을 할 셈으로 침대 위에 눕히고 손에 십자고상을 쥐어 주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십자고상이 그녀의 손에서 떨어졌다. 친구들은 몇 번이나 다시 쥐어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예수님은 그 더러운 손에 쥐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들인가! 그러면 이런 죄에 빠진 사람들은 건져낼 방법이 없을까?

그런 죄를 회개시키는 데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철석같은 결심이고,
둘째는 죄를 범할 기회를 피함이요,
셋째는 자주 성사를 받는 일이다
.

첫째로 철석같은 결심을 해야 한다는 실례를 들어보자.
성 아우구스티노는 30세까지 방탕한 생활을 해오다가 눈이 열려 지금까지 생활을 청산하기로 굳은 결심을 하고 젊음의 쾌락을 버린 채, 신부가 되고 주교가 되었을 뿐 아니라 큰 성인이 되었다. 그 분은 교회의 유명한 박사로 존경받고 있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도 30세 때 종전의 세속생활에 싫증을 느껴 단단히 결심하고 어느 수도원의 문을 두드려 거기서 엄한 보속을 하면서 자기 죄를  깨끗이 청산한 뒤에 예수회를 창립하여 교회의 빛나는 성인이 되었다.
아브룻도의 귀족 리레스 성 가밀로도 젊었을 때 이 세상의 향락과 방탕에 빠졌다가 25세에 수사가 되어 자신을 온전히 예수와 마리아에게 바쳐, 남은 생애를 병자와 임종 때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다.
통회의 성녀 막달레나도 그렇지 않았던가!
골드나의 성녀 마르가리타도 사욕과 기만의 그릇이었으나 하늘나라의 화분으로 변하지 않았던가? 저 성인 성녀들의 굳은 결심은 자신을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구원의 길로 인도했던 것이다. 그런 결심이 없었던들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둘째로 죄를 범할 기회를 멀리하여 죄를 피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성인들의 모범을 본보기로 하자.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어떤 탑 속에 갇히어 음탕한 여성에게 유혹을 받았을 때 그녀를 쫓을 방법을 연구하다가, 화로에 타고 있던 나뭇가지를 집어들고, “나가라. 나가지 않으면 이것으로 지진다.”라고 소리지르며 그 여성을 내쫓고 나무 끝으로 벽에 십자가를 긋고 그 앞에서 기도했다한다.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이 18세 때 파도아에서 공부하던 중이었다. 품행이 좋지 못한 젊은 여성이 악의를 품고 그를 끌어안으려 했다. 성인은 그때 어떻게 했던가! “사탄의 심부름꾼아, 빨리 가라”고 말하면서 침을 뱉었다 한다.
젊은 디오스고로는 자신의 신앙을 버리도록 하려는 적의 온갖 계교를 물리쳤지만 최후에는 그를 유혹하려는 여자에 의해 장미의 침대에 붙잡혀 묶이게 되었다. 이 경우에 그는 어떻게 했던가? 그는 천주께 기구하고 자기 혀를 깨물어 그녀의 얼굴에 피를 뱉었다. 순교자의 피를 뒤집어 쓴 그 음탕한 여자는 무서워서 달아났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자기 죄를 회개하고 착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한다.
그런데 혹시 어떤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저분들은 성인들이니까 그렇게 했지만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냐?”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는 저분들도 성인이 아니었고 우리와 똑같은 약한 인간으로서 범죄를 할 것이냐, 이 기회를 단단히 피하기로 결심할 것이냐 하는 두 갈래 길에 섰다가, 용감하게 그 유혹을 이겨 결국 성인이 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비록 성인은 아니지만 신자된 것만으로도 초성의 힘으로 능히 죄를 범할 기회를 끊을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은가?

내가 잘 알고 있는 어떤 처녀가 멋대로 살아가는 어느 군인으로부터 음탕한 말로 가득 찬 엽서 한 장을 받았다. 그녀는 그 엽서를 봉투에 넣어 군인에게 돌려보내며 엽서 뒷장에 이렇게 적었다. “신자인 저에게 맞지 않는 그대의 말이 군인인 그대에게도 맞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또 어느 처녀는 약혼한 남성으로부터 멋대로 쓴 편지를 받고 “나는 정결하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기로 하여 오늘부터 그대와 인연을 끊나이다.”라고 말했다.
오래 전에 토리노시에서 생긴 일이다. 어느 전차 정류장에서 많은 승객 가운데 어느 방탕한 젊은이 한 사람이 얌전한 아가씨에게 무례한 짓을했다. 그 아가씨는 성이 나서 뒤돌아보며 “내가 성낸 이유를 알고 싶소?” 하며 그의 따귀를 보기 좋게 한 차례 후려갈겼다. 그는 “아니 여보시오! 잘 알았소” 하면서 수건으로 코피를 닦으며 슬그머니 달아났다. 모든 사람이 이 아가씨들처럼 용감하면 세상에는 더럽고 짓궂은 청년들이 차츰 줄어들지 않을까?

우리는 모든 죄의 어머니인 게으름에 주의해야 한다. 게으른 사람은 항상 죄에 떨어지기 쉽다. 심심하게 지낼 때 자주 사음의 마귀가 유혹한다. 그 유혹을 당하는 사람은 자칫하면 죄에 빠진다. 그러니 게으름은 모든 죄의 근원이요, 어머니로 불린다.

셋째로 사음죄를 피하기 위해서는 자주 성사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고해성사는 매주일 또는 한 주일 건너서 하든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해야 할 것이다. 영성체는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받아야 한다. 성체성사로 벙어리 마귀를 이기며, 그 올가미를 물리칠 수 있다.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고,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 성체성사다. 성 필립보 네리와 성 돈 보스코는 자주 성체와 고해를 받는 사람은 사음죄를 계속 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수많은 사제들과 수사, 수녀들의 정결을 믿지 않는다.
이 더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저들이 순결과 정덕을 지킬 수 있는지 믿지 않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성사의 위력을 모르기 때문이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자주 고해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로 영혼을 깨끗이 씻고, 자주 영성체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살을 먹어 거룩하게 일치되는 그 비법을 세상 사람들이 믿지 않거나 모르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에 어느 젊은 변호사가 친구였던 어떤 신부에게 농담 비슷하게, “제가 신부님의 신앙도 믿고 신부님의 희생정신도 믿지만, 신부님의 정결은 믿을 수가 없소.”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묘한 질문을 받은 신부는 대답하기를, “당신도 실행해 보세요. 그러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무엇을 말씀입니까?”라고 변호사가 묻자, 신부는 “자주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를 받아보란 말이오!”라고 대답했다.
변호사는 그 말에 별로 호기심을 느끼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다가는 또 다시 조금 전에 말한 문제로 돌아갔다.
그럭저럭 반년이 지났다. 그 변호사는 신학생 복을 입고 신부 앞에 나타나더니, 또 1년이 지나서는 신부가 되었다. 그는 유명한 선교사가 되어 사제들의 정결을 변호하는 성직 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신부의 말대로 실행했으며, 그 신비로운 힘을 성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정결은 여러 가지 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백합꽃과도 같은 존재다.
정결은 사람을 하늘나라로 끌어올리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값진 보배를 지키는 사람으로 만든다. 정결한 사람은 항상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그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맑고 고요하다. 정결은 영원한 구령(救靈)의 희망과 굳센 자신을 간직하게 한다. 정덕을 지키는 사람은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유명한 음악가 모차르트는 25세 때 큰 명성을 날렸다. 1881년 1월 27일 밀라노에서 그의 생일 잔치가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그는 이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천주님 앞에 맹세하노니,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정결하지 않은 일이나 양심에 가책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성공이요, 나의 광명(光明)의 비밀이다."
그는 정덕을 지켰기에 자신의 힘을 확신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처럼 자신있게 잘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2월 1일] 거룩하신 생명의 말씀 '복음' 
<마르 5,1-20>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오늘의 묵상]
동네 사람들은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을 기피했습니다. 괴성을 지르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에 무덤가에 묶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리는’ 괴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 앞에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입니다. 그런데 그가 무릎을 꿇고 외친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괴력의 남자는 예수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성경은 그를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자라 했습니다. 쇠사슬을 끊고 족쇄를 부수어 버리는 힘은 그의 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를 사로잡았던 ‘더러운 영’의 힘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그 사람에게서 물러가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복음의 교훈은 간단합니다. 어떤 ‘영’도 예수님 앞에서는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그를 ‘말씀 한마디’로 제압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악한 기운’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술만 먹으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맨 정신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이 술만 먹으면 남을 괴롭힙니다. 괴력을 발휘합니다. ‘어떤 힘’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찌 술뿐일는지요? 일중독, 게임 중독, 놀이 중독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악한 기운’에 사로잡힌 자를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이 한 말씀에 그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선한 기운’을 되찾은 것이지요. 주님의 말씀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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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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