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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혹시 나는 관상용 그리스도인은 아닙니까?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1 조회수481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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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혹시 나는 관상용 그리스도인은 아닙니까?
(시드니에서 온 편지)


오래 전 Marsfield에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밑으로는 Lane Cove 계곡이 있어 수많은 나무들이 눈 안으로 들어오는 숲 속의 집이었습니다. 정원에 포도나무가 있는 것을 보고 포도가 맺히기를 몇 년간 학수고대 했는데 끝내 포도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과실류가 아닌, 단지 보기 위한 관상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얻고자 하였으나 열매는 없고 잎사귀만 무성한 것을 보시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하나의 상징적 행위로서 겉만 화려하게 꾸민 유대 종교의 외식주의에 대한 실상을 질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관상용 유대인,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외식적인 유대인처럼 관상용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그리스도인. 이러한 자들은 주님 앞에 가서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헌금을 했고,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에서 봉사했고, 주님의 이름으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고 구차한 변명을 해보지만 그러나 주님은 나는 너를 알지 못하니 나를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관상용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나무의 생명은 열매입니다. 그 나무의 열매를 나눠주고 그래서 그 열매의 씨앗이 땅에 심겨져 또한 새로운 생명의 열매가 또 맺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 그 나무의 존재가 보존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 또한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 열매를 나눠 주고 그래서 그 성령의 씨앗이 다른 사람들에게 심겨져 그들도 또한 새로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온전히 확장되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사도 바오로를 통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시고 구체적으로 성령의 열매까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어 내 안의 가지에만 매달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따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먹은 사람들도 성령의 열매를 맺고 그렇게 해서 성령의 나무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곧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관상용 교회가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교회, 교회의 외적 치장에만 신경 쓰고 교회의 힘만 자랑하는 교회는 관상용 교회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땅 끝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교회는 교회이름은 있지만 실제로는 죽은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관상용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입니까? 내가 섬기는 교회는 관상용 교회입니까? 아니면 열매를 맺는 교회입니까?

(김해찬님의 글에서 부분 발췌)




[2월 2일] 거룩하신 생명의 말씀 '복음' 
<루카 2,22-40>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오늘의 묵상]
율법에서는 아이를 낳은 산모를 ‘일정 기간’ 부정한 몸으로 규정해, 남편과 떨어져 있게 했습니다. 몸에 피를 묻혔기 때문입니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33일간이었고, 여자아이를 낳으면 66일간이었습니다. 이 의식이 ‘정결례’의 핵심입니다. 오늘날에는 사내아이는 7일, 여자아이는 14일로 축소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뒤, 사내아이는 성전에 봉헌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셨기에 주님께 드린다는 종교 예절입니다.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굉장한 ‘마음가짐’이지요. 그리고 형편에 따라 새끼 양이나 비둘기를 봉헌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비둘기 한 쌍을 바치십니다.
신앙인 역시 봉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례성사로 주님께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사건을 그분께서 ‘주시는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기쁘고 즐거운 일에는 봉헌이 쉽습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일에는 힘이 듭니다. 억울한 사건을 ‘주님께서 주셨다고’ 여기는 것은 ‘신앙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시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봉헌의 삶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시메온과 한나를 만나십니다. 그분들이 우연히 아기 예수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평생 의롭게 살았기에 구세주를 뵈올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신심 깊은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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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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