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자기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고정 관념’ 탓입니다. 그분의 소년 시절을 떠올리며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들은 이렇게 수군거립니다. 못 믿겠다는 말입니다. 기적의 소문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마법사나 점쟁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사람들의 편견’을 놀라워하십니다.
누구나 과거에 ‘매여 살면’ 그렇게 됩니다. 지난 일을 ‘지나간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렇게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힘든 인생’을 살게 됩니다. 자신도 힘들고 남도 힘들게 하는 삶입니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기 마련입니다. 변화를 거부하면 결국은 퇴보합니다. 자연의 평범한 ‘진리’입니다.
신혼 초에는 남자가 말이 많고, 여자는 듣기만 합니다. 이삼 년이 지나면, 여자가 말이 많고, 남자는 듣는 쪽이 됩니다. 아이를 낳고 나면 가끔씩 싸우기도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떠드는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의 ‘내면’을 보게 됩니다.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면 ‘진정한 사랑’은 영영 싹트지 않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었더라면 ‘주님의 기적’을 만났을 것입니다. 삶의 풍요로움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행복의 주님을 그들은 놓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