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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왕(魔王)이시여, 제발 이제 저를 놓아주소서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3 조회수415 추천수1 반대(0) 신고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마르코 5:1-20).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는 “제 이름은 폭도(mob)입니다.”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미쳐있었기 때문에 ‘폭도’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엄격한 훈련을 받아 군대가 되므로 군대는 폭도들처럼 무질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친 사람들이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이었을까? 바로 우리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성경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이야기 중에 나오는 모든 인물을 자신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마귀들이 돼지 안으로 들어간 것은 아주 극적인 장면이다. 러셀(Bertrand Russell)은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Why I am Not a Christian)?』에서 예수님께서 완전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이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다. 그는 돼지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 중에는 돼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고통을 받고 있는 인간도 있다. 예레니모 성인(St Jerome)은 2천 마리의 돼지가 있었기 때문에 2천 명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돼지 한 마리당 더러운 영에 들린 사람이 한 사람씩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직접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아무도 마귀나 돼지에 관심이 없으므로 돼지 수를 센 사람은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평신도 신학자였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160-225)는 “하느님께서 머리카락을 세셨듯이 돼지 털까지도 세셨습니다.”하고 말했다. 이 사실은 러셀에게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돼지 고기를 무척 좋아했다. 99년 동안 살면서 그가 먹은 베이컨과 소시지는 엄청난 양으로 아마 돼지 2,000마리는 되었을 것이다. 돼지들은 이야기 중에 나오는 먼 친척보다 훨씬 더 처참한 죽음의 고통을 겪었다. 마르코 복음은 오로지 고통 받는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두 상징적인 의미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것이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는 깨끗하지 못한 것들만 말하고 있다. 당연히 마귀도 깨끗하지 못하다. 유대인들은 종교적인 의식을 거쳐 깨끗하게 되지 않으면 시체나 무덤을 만질 수 없었다(이 때문에 지하 묘소는 눈에 띄게 하얗게 칠해져서 모르고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러나 더러운 영이 들린 이 사람은 무덤에서 살았다. 돼지는 깨끗하지 못한 동물로 생각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사는 곳에는 돼지가 없었다. 또 유대인들은 물을 무척 두려워했기 때문에 선원(船員)도 없었다. 그들은 바다를 거대한 바다 짐승인 심해의 괴물이 사는 곳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귀신들린 사람들로 둘러 싸여 있었으며 악의 세력이 끊임없이 침입하였다. 복음의 마지막에 더러운 영들이 머무르기 가장 좋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서 거대한 바다 짐승들이 살고 있는 호수로 뛰어든 것으로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 정상을 찾았다.
 
영국의 극작가 말로우(Christopher Marlow)가 쓴 『파우스트의 극(Tragical History of Doctor Faustus, 1588)』은 먼저 천상에서 신과 악마가 인간에 관해서 나누는 대화에서부터 실질적인 극의 내용이 전개된다. 파우스트는 따분한 삶 때문에 점점 피곤해했다. 그는 권태를 없애기 위하여 악령에게 명령하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판다. 그의 친한 친구들은 충격을 받고 그에게 회개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라고 권하지만 듣지 않았다. 24년 동안 악마가 준 능력을 즐겼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 왔다. 자정을 알리는 시계 종이 울리자 파우스트는 울면서 말했다. 마왕(魔王)이시여, 제발 이제 저를 놓아주소서!”
 
예수님도 인성(人性)을 취하셨기에 인간의 모습을 보이신 적이 있다. 그러나 잘못을 범하신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인간은 완전할 수가 없다. 따라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나 어떤 은사를 받은 사람들도 절대로 완전할 수가 없다. 파우스트와는 달리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신봉하다가 마치 신비주의자처럼 모든 일을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는 미친 사람이 있다.정신병자는 일반적으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말한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뇌 호르몬의 분비 불균형으로 정상적 사고활동에 지장을 받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열렬한 신자인지 아니면 정신병자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우며 정신 병원으로 데리고 가기가 무척 어렵다.
간단한 약물치료만 받으면 나을 수 있지만 병을 한사코 부인하기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는 수가 많다.
 
결국 그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 말대로 따라가다가 예언이 잘못되었을 때에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예언의 은사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믿고 따라야 할 것은 “말씀”밖에 없다.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그 여인을 구원하였다. 이 “믿음”은 “산을 옮기고 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을 믿는 것”으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루카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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