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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의 일, 남의 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6 조회수759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4주간 토요일 - 나의 일, 남의 일

 

 

 

개신교 신자들은 주일을 철저히 지킵니다. 천주교 신자들도 요즘엔 많이 주일을 지키며 주님을 찬미하지만 아직도 주일에 일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전에 직장에 다닐 때는 주일은 결단코 쉬어야 했던 사람들도 자신의 사업을 가지면 주일에 쉬지 않습니다. 잘 될 때는 밤을 며칠 세어도 수익이 늘어나는 기쁨으로 그 힘듦을 이겨냅니다. 만약 남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고 하면 못할 것입니다. 나의 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에 그 힘듦을 잊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의 일’을 할 때는 ‘남의 일’을 할 때보다 몇 배의 힘이 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복음전파를 마치고 예수님께로 다시 모여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와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라고 하시며 배를 타고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함께 떠나십니다.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 성인은 사막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도 도시에 나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막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도시에 머물지 않고 왜 자꾸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으로 돌아가느냐고 사람들이 묻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지요.”

성인에게는 사막이 바로 물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 친밀히 만나는 것은 힘들어집니다. 정신이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외딴곳으로 당신의 제자들을 데려가신 이유는 번잡한 세상을 떠나서 사도들이 당신과만 머물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 다시 힘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만 있는 것을 보고 언니 마르타는 예수님께 동생도 좀 일을 하라고 말씀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너무 많은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참으로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진정 필요한 것은 예수님과 교회를 위해 외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 머물 줄 아는 영성이라는 말씀입니다.

 

기도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알지만 우리는 사랑으로 그것까지도 넘어설 수 있어야합니다.

사람들은 배가 떠나는 것을 보고는 육로를 통하여 배가 도착할 곳에 먼저 가서 기다립니다. 배보다 어떻게 사람의 발걸음이 더 빨랐는지는 미스터리하지만, 어쨌든 좀 쉬려고 했던 사도들은 사람들을 보고 놀라고 어떤 면에서는 밥 먹을 시간도 주지 않는 사람들이 짜증까지 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아서 당신이 직접 많은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스승이 일을 하는데 제자들이 어찌 쉴 수 있겠습니까? 그 귀한 기도와 쉼의 시간도 한 영혼을 더 구하시기를 원하는 예수님의 뜻 앞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치지 않으시는 이유는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일을 하면서 힘들고 짜증난다면 과연 지금 하는 일이 혹시 ‘남의 일’처럼 억지로 하고 있지는 않는지 뒤돌아보아야합니다.

 

성당 봉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나와 가정을 생각한다면 봉사하는데 쓸 시간을 찾기가 힘듭니다. 아마도 성당 신부님들이 가장 힘든 것이 봉사자를 찾는 일일 것입니다. 정말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를 ‘나의 일’처럼 하는 몇 분만 계시면 어떤 성당이든 활기 있게 잘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일이 나의 일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그만큼 사랑하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타볼산은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영광의 장소입니다. 베드로는 천막을 치고 그 곳에서 머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바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오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해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서 왜 인간을 위해 내려오셨는지 잘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원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나의 일’처럼 하시기 위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대표하는 베드로는 그냥 그 휴식에 머물고 싶습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아직은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배워야 했던 것은 기도 안에서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었느냐를 묻고 그 뜻을 ‘나의 일’처럼 수행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기도를 하면 그냥 오래 앉아있는 것을 넘어서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그리스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원하시지만 하지 못하시는 일을 마치 ‘나의 일’처럼 해내야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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