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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김웅열 토마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6 조회수482 추천수8 반대(0) 신고
                                                           

 

 

       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감곡 성당-photo by benedict

 

 

 

†찬미예수님

 

저는 성체에 대해서 생각만 하여도 영적인 울렁증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예수님은 네 가지 모습으로 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첫 번째는 성체와 함께 계심을 믿고

두 번째는 성령과 함께  계심을 믿고

세 번째는 성경, 말씀과 함께 계심을 믿고

네 번째는 성모님과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네 가지의 거룩함

{성체, 성혈, 성서, 성모님}


가톨릭의 중심은 성체입니다.

그리고 성모신심은 그 울타리입니다.

울타리는 나무와 나무를 연결해서 만든 것인데, 그 울타리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

바로 성체요, 성령이요, 말씀이 아니겠는가!


성 암브로시오 성인은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성체와 성혈이 되는가!

그것은 축성에 의해서이다.


사제가 서품을 받을 때도 축성을 받습니다.

미사 때마다 사제의 입술에 의하여 밀가루와 포도주가 축성되어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합니다.

사제가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받아 마셔라!’

할 때는 사제인 김웅열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체 안에서 사제가 말하는 것이지요.

이 신성한 축성의 단어에 의해서 예수님은 제대 위에 ,감실 안에, 성체의 형상으로 계시게 됩니다.

 


어느 개신교 신학자가 저에게 세 가지의 질의서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강의를 많이 들어보았고,  TV도 많이 보았고, 신부님의  테입을 통해서도 들어보았는데, 신부님은 특별히 성체에 대한 신심이 크신 걸로 압니다. 그래서 성체를 영하지 않는 우리 개신교를 구원에 대한 보증이 없다고 얘기하셨는데 신학자 입장에서 신부님께 질의를 드립니다.

첫 번째,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저는 신학자의 이 질문에 아주 평범하게 첫 번째 답을 해드렸습니다.

<당신이 태어났을 대 아주 작았지만 당신이 먹은 음식이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됨으로서 당신의 몸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먹은 빵이 우리의 살로 변할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 질문은 그럼 예수님이 과연 그 작은 제병 안에 계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입니까? 어떻게 사람의 몸뚱이가 그렇게 작은 밀떡 안에 존재한단 말입니까?

저는 이렇게 간단히 대답을 했습니다.

<목사님 주위의 풍경을 보십시오. 그 넓은 풍광에 비해서 당신의 눈은 얼마나 작습니까? 당신은 그 작은 눈 안에 저 넓은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상으로 되는 일을 하느님께서 할 수 없으시단 말입니까?>


세 번째 질문은 그러면 한 몸이신 예수님이 모든 축성된 제병 안에 동시에 계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저는 아주 간단하게 답했지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거울을 마룻바닥에 던져 보십시오. 깨진 거울 조각조각, 그 마다마다에 깨어지기 전의 영상이 동시에 들어가 있습니다.전 세계에서 똑같이 미사가 드려지더라도 예수님은 동시에 수천 개, 수백만개의 축성된 제병 하나하나에 성체로 현존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네 번째 질문이 올 줄 알았더니 일 년 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 기도하느냐~ 저에게 질문을 한 그 목사님이 다음번에 이메일을 보낼 때

‘신부님, 저 어저께 개종해서 예비자 교리반에 나가고 있습니다.’

하는 말을 해 줄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 가톨릭에는 2천년 동안 수많은 기적과 신비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기적은 뭐고 신비는 뭡니까?

아시는 분?


기적(奇績)은 검증이 가능한 겁니다.

이 성지에 오기 전에 다리가 짧았던 사람이 순례를 하고 절뚝거리지 않고 다리가 길어서 갔다?

이것은 전과 후가 확실하지요?

이 성지에 오기 전에는 온몸이 암덩어리였던 사람이 성지 순례후에 의사로부터

‘그 많은 암덩어리가 어디로 갔느냐?’ 하는 치유를 받았다면 이것은 검증이 가능한 겁니다.


신비(神秘)는 뭐냐?

성체를 받기 전에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 하면 신자들은 뭐라고 합니까?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신비라고 하는 것은 그 사건이 있기 전이나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요.

축성되기 전의 제병이나 축성한 후에 성체나 모양이 똑같지요?

축성한 후에 살덩어리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 징그러워서 어떻게 먹습니까?

똑같아요.

전후의 모양이 검증은 되지 않더라도 그 신비의 은혜를 받은 사람의 삶의 태도의 변화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기적보다도 훨씬 높은 단계가 신앙의 신비입니다.

왜냐?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기적을 보면 믿습니다.

그러나 신비는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신앙이 있어야만 절절히 믿을 수 있는 게 신앙의 신비입니다.

신앙을 통해서 영적 확실성이 됩니다.


소화데레사 성녀는

‘나는 천국에서 주님을 직접 뵙고 있는 영혼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병의 형상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를 늘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예수님을 뵙지 않을 뿐이지... 제대 위에 계신 예수님을 뵐 수 있기에 천국에 먼저 가 있는 영혼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 데레사 성녀는

‘내가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에 살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현존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더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지 않고 그 분의 옷자락을 잡아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주님을 영할 수가 있다는 것이 예수님 시대에 살던 사람보다 더 큰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성인전을 읽어보면 성인이 되는 비결 중에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한 가지, 성인들은 늘 성체조배하고 성체강복에 참여했습니다. 그분들은 삶의 중심에 성체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헝가리의 왕비인 성녀 엘리사벳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왕궁의 소성당 근처에서 자주 놀곤 했는데 친구들과 놀다가도 엘리사벳 성녀는 그 자그마한 어린아이가 자물쇠에 입을 맞추면서

“예수님, 제가 비록 지금 놀고 있어도 주님을 항상 생각합니다.”

소성당 안에 계신 예수님께 늘 인사를 드리고 아이들과 놀았다고 합니다.


제가 20여년 전에 중국선교를 갔었는데, 그때는 모택동이 죽고 나서 등소평이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서 개방정책을 써서, 외국사람들을 들어오게 했던 그 초기에 저는 참 어렵게 중국선교를 다녔습니다.

조선족에도 몇 년  갔었고, 한족에게도 몇 년 동안 피정을 갔습니다.

어느 중국 교우촌에 갔는데 그 동네를 돌아보니까 이상하게 모든 집의 창문이 가리키는 방향이 예외 없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 방향에는 반드시 성당이 서 있었습니다.

집을 그렇게 지은 이유는 중국이 공산화 된 이후에 중국의 천주교신자들은 성당에 갈 수 없었습니다.

성당을 갈 수 없었던 중국 천주교신자들은 집을 지을 때마다 문과 창문을 성당 쪽으로 향해서 내고, 문 앞에 서서 주님을 경배했고 ,창문가에서 성당을 쳐다보면서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사모하고 그리워했던 겁니다.

이 마을 80여 가구가 모두 남향, 북향 따지지 않고, 아무리 그늘이 들고  일년 내내 춥다고 해도....주님만 바라볼 수 있다면 주님이 계신 성당만 바라볼 수 있다면 남향, 북향이던 그들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중국교회는 50여년 동안 신앙을 지켜왔던 것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에게 천사가 내려와 여러분에게

‘예수님께서 어느 집에 기다리는데 거기에서 당신을 기다리십니다....’

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하던 모든 일을 포기하고, 즉시 일어나서 그 분이 계신 그 집으로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바로 성당 안에서 예수님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한 보스코 성인은 우리들에게 이런 충고를 해주십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많은 은총을 주시기를 바라십니까?

그러면 그 분을 자주 방문하십시오.


당신은 은총을 조금만 받기를 싶습니까?

그렇다면 어쩌다 조금만 방문하십시오.


당신은 마귀가 당신에게서 멀리 달아나기를 바라십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자주 방문하십시오.

성체조배는 마귀를 정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방법임을 잊지 마십시오.


성 알퐁소는 이렇게도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모든 일생 중에서 당신이 성체 앞에서 보낸 시간이 당신에게 가장 큰 힘이 될 것이고, 당신의 영혼과 임종 때에 당신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됨을 잊지 마십시오.


구약에서는 하느님이 ‘나를 보면 죽을 것이다!’

그래서 구약백성들은 하느님 쪽을 바라볼 수도 없었고, 하느님의 아름을 부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하느님은  ‘너희는 나를 안 보면 죽을 것이다!’

그게 바로 ‘성체’ 입니다.

나를 쳐다보는 것뿐만 아니라 ‘나를 먹어라!’ 그랬습니다.


개신교에서는 꿈도 꾸어보지 못하는 주님의 몸과 피를 천주교신자들은 먹고 마십니다.

천주교 사형수들이 그 하루하루의 모진 두려움과 공포를 한 달에 한 번 먹는 성체로서 죽음을 준비합니다. 사형 당일 날, 마지막 성체를 영하고 사제에게 축복을 청하면서 의연하게 죽습니다.

이게 바로 성체입니다.


백약이 무효인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 허벅지를 떼어서 아버지를 살린  자식의 이야기가 있지만 성체는 반대입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는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미사 때마다 아버지가 당신의 살을 잘라서 우리의 입에 넣어주는 것이 바로 천상의 약인 성체입니다.


산삼을 먹고 온갖 좋은 약을 먹어도 백년을 못 넘기지만,

성체를 진정으로 배령하는 자는 영생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입에는 주님의 거룩한 성체가 들려질 겁니다.

오늘은 특별히 성체성혈 대축일이기 때문에 성혈까지 찍어 드릴 겁니다.

그거 쉬운 게 아닙니다. 성혈 찍어 입에 넣어드릴 때마다 불안합니다.

성혈이 떨어질까 봐, 혹시 다시 묻어서 나올까 봐, 저는 손에 땀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어떨 때는 성체가 손에 따라 나옵니다. 그 사람 없는 것도 모르고 그냥 가다보니까 씹히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나를 쳐다봅니다....나도 쳐다보면서 다시 오라고~~


특별히 성모님의 성지에서 양혈영성체를 하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세례 받는 날 조차도 성혈을 안 찍어 주는 성당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자들은 한 번도 주님의 성혈을 영해보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살에는 피도 섞여 있기 때문에 똑같은 것이라고도 생각하지만 신자 들 입장에서는 약 오릅니다. 신부님은 미사 때마다 홀짝홀짝 마시고 우리들은 왜 안 주냐 이거지~

자기들은 큰 것 잘라서 넙죽넙죽 먹고 우리들은 500원 동전만한 것 하나만 주고~~


오늘 양혈 영성체 하시면서 다 푸시고 성체 영하러 나오시면서 다른 말 하지 마십시오.

‘주님, 죄인입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그 이상의 말은 교만입니다.

솔직히 성체 영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점수로 따져서 95점 이상 신앙생활 한 사람만 나오라고 한다면 저도 자신 없습니다.

죗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식 살리려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당신의 살을 잘라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신비입니다.


성체 받으러 나올 때 성체 영하기 전에 뭐~~뭐 주십시오.

그 이야기 할 게 아니라. 그것 얘기 하지 않아도 다 아십니다.

니가 뭐가 필요하고 니가 어디가 아프고...그건 이미 다 아십니다.

미주알고주알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 다 밝히는 것도 그 분 무시하는 겁니다.

다만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주님, 저 죄인입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성전에도 못 들어가고 성전 밖에서 하느님도 못 쳐다보고 눈물을 흘리며

자비를 청했던 세리의 기도를 하셔야지, 성전 앞에서 어깨 쭈~욱 펴고 당당하게

'나는 음탕하지도 않았어요...나는 부정직하게 산 것도 없어요. 일주일에 두 번 단식 칼 같이 하고,  십일조 칼같이 하고 의인입니다. 저 뒤에 있는 세리, 저 놈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저놈은 죄인이고 저는 의인입니다.'

했던 바리세이처럼 건방 떨지 말고.... 그 날 의인으로 인정받고 간 것은 바로 세리였습니다.

 

‘주님, 죄인입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느님 앞에 같은 말만 되풀이 하며 눈물 흘렸던 세리처럼

'주님 죄인입니다.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그리고 자리에 들어가셔서 성가 부르지 마시고 성체를 영한 직후의 여러분의 손은 여러분의 손이 아니라 예수님의 손으로 변해 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손을 가지고 스스로 치유기도하십시오.


마음이 아프신 분들은 가슴에 손을 대고 치유를 청하십시오.

육신의 병이 드신 분들은 그 손을 가지고

‘주님, 당신의 손이 제 몸에 병을 치유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미사 끝나고 예수님의 손을 그대로 집으로 모시고 가십시오.

아이들에게 머리에 손을 얹어 예수님의 손으로 축복을 주십시오.

집에 환자가 있을 때도 머리에 손을 얹고

‘예수님, 우리 남편 치유시켜 주십시오.’

‘우리 시어머니 중풍에서 해방되어 당신 발로 성당 가게 해 주십시오.

믿는 대로 될 것임을 믿습니다. 아멘

 

 

♧ 2009년 6. 14일 - 성체성혈대축일 (느티나무신부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감곡성당-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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