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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37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8 조회수474 추천수7 반대(0) 신고
 

 

 ♣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

 

II. 삼위일체

 

 

3.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이다.

 A. 예수-그리스도

 

Universale concretum

우리는 ‘예수’란 말과 ‘그리스도’라는 말을 붙여 쓰면서 사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는 역사에 있었던 한 인물이고 ‘그리스도’는 그 인물이 인류 구원을 위해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어 오신 메시아란 뜻입니다. 즉, 예수는 역사적 한 인물의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그 예수가 주님이시라는 믿음고백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하나의 역사적 인물로만 여기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라는 말을 뒤에 이어 붙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부르는 사람은 이미 그 분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일어나는 무서운 현상들을 보고는 “이 사람이 참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를 고백하게 됩니다. 토마스 사도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서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 고백합니다. 이렇게 예수에서 그리스도까지 도달하기는 머리에서 심장까지 도달하는 것처럼 가깝지만 오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역사적인 예수님을 보면서 어떻게 그리스도라는 믿음에 도달하게 될까요? 그 분은 당신 자신을 호칭하면서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는, ‘하느님의 아들’로 보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가리키며 ‘사람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밖에는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부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시기에 당신이 사람의 아들임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한다는 것은 이렇게 역사 안에 오시어 짧게 계시다가 간 그 분이 바로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메시아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그 분의 삶이 아주 ‘역사적이고 구체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삶이 ‘영원한 보편적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자신의 삶이 모든 인간이 세세 대대로 따라야 할 모범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보편적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보편적인 분은 하느님밖에 안 계십니다. 오직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사셨어야만 그 삶이 보편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는다면 그 삶이 우리도 따라야 할 모범이 됩니다. 그 삶과 하나가 되어야만 유한한 우리도 무한성을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란 말은 그 분의 삶이 바로 영원한 진리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나타내주는 것이어야 하고 그 자체이어야 합니다. 새 성작에 미사를 해서 성혈이 한 번 닿으면 그 성작은 이전의 성작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성혈로 축성된 거룩한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삶도 구체적인 것이지만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그리스도, 즉 히브리어로 메시아란, 기름부음 받은 자, 즉, 성령님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의미는 이렇게 그 분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고 성령님을 통해 행한 모든 구체적인 역사들이 하느님 삼위일체의 사랑을 보여준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정말 십자가가 하느님 삼위일체 사랑의 계시임을 믿고 있다면 예수는 더 이상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Ellisse

그런데 믿음은 단지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믿음의 대상을 닮아가도록 만듭니다. 상대를 믿거나 사랑한다는 것은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서로 상대를 ‘포함’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은 마치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계신 것처럼’ (요한 14,10. 11) 그 사람도 ‘당신 안에 머물고 당신도 그 안에 머물게 된다.’ (요한 14, 20: 17, 21)고 하십니다.

사람이 서로 쳐다보면 서로서로 내가 상대의 눈 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관계는 이렇게 서로를 포함하여 하나가 되게 만듭니다. 이는 사랑으로 서로 한 몸이 되는 현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으면 올바로 보게 되는데 올바로 보게 되면 이전의 자신은 아니게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코린 13, 1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요한 3,2)

즉, 믿는다는 말은 본다는 말이고 본다는 말은 내 눈 속에 상대가 있는 것처럼 서로를 포함하며 한 몸이 되게 되는 것이고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해 질 수 있는 길은 이 길밖에는 없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 - 왕, 사제, 예언자

성경에 베드로만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이것도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하시며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줍니다. 이는 오직 교회만이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으로 예수님을 온전히 그리스도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교회만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볼 수 있고 교회만이 그리스도와 온전히 일치하여 그 분과 성체를 통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것을 넘어서서 교회의 신앙과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즉, 교회에서 가르치는 진리들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통하여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에 하늘나라 문을 여는 열쇠를 주셨습니다. 즉, 당신 자신의 충만한 능력을 교회에 맡기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 곧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되는 길입니다. 믿음도 성령님의 은총인데 이 성령님은 교회의 성사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충만히 내려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이 충만히 내려오셨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구약성경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 즉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은 왕, 예언자, 사제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보편적인 왕이고 예언자고 사제이었어야 합니다. 우리도 세례를 받을 때 성령님을 받기 때문에 이 직무를 함께 부여받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어떤 분이셨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그 분은 왕이셨고 사제이셨고 예언자셨습니다.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가 된 우리들도 그분의 이 세가지 직무에 참여하게 됩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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