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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숙인의 사회를 향한 도전>-이정규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08 조회수514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0년, 노숙인의 사회를 향한 도전은 계속 된다
[기고-이정규]
 
2010년 02월 07일 (일) 16:15:59 이정규 .
 

2009년 12월 31일, 한해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밤,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밝은 모습으로 희망을 외치는 모습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장면이다. 불꽃놀이를 하고, 멋지게 차려입은 연예인이 화려한 무대를 뽐내는 그 시간에도 광화문 광장과 멀지 않은 종로와 서울역 광장의 한 모퉁이에는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매서운 칼바람 속 이미 해질대로 해진 이불 속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노숙인’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이다.

   
 

늦은 밤, 또는 이른 아침에 서울역 인근의 지하도나 광장, 영등포역 등지를 지나다보면 종이박스를 쌓아 올려 그 안에서 잠을 청하거나, 맨바닥에서 웅크리며 잠을 청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행인들은 그 사이를 지나며 웬지 모를 혐오감과 심지어 위협감마저 느끼는 듯 멀리 피해 다닌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위협을 받거나 혐오감을 얻을 만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건 아마도 평상시에 길을 가다가 다른 행인들과 시비가 붙어 다툼이 생길 확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바로 그것이다.

사회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회적 편견 속에서 점점 사회와 멀어지는 노숙인들, ‘도시속의 섬’이라고 불리울 만큼 사회와 단절된 고된 삶을 살고 있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은 사회복귀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2009년 서울시가 파악하고 있는 노숙인의 수는 약 3,200여명이다. 이 수치는 노숙인 쉼터나 부랑인 시설에서 보호되고 있는 노숙인의 수와 거리노숙인의 수를 합산한 노숙인의 수이다. 거리노숙인의 수는 서울역, 영등포역, 용산역, 종로, 청량리 등 주요 노숙지역의 인원 수를 집계한 것으로 그 외 지역의 노숙인 인원 수는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3,200여명이라는 수치는 최소한의 수치이고, 이보다 더 많은 노숙인이 상존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쪽방, 고시원 거주민 등 노숙과 탈노숙을 반복하는 ‘노숙위험군’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치는 더욱 높아진다. 학계의 어떤 교수는 집계된 수치의 10배에 달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그 만큼 우리나라의 빈곤문제는 점점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이하 다시서기센터)는 시설로 유입되지 못한 거리노숙인을 직접찾아가 현장보호 및 시설 입소 등 다양한 상담을 진행하는 아웃리치(out-reach) 상담을 연중 365일 활발히 진행한다. 전문상담원이 다양한 사회복지자원을 제시하여 이들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자활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기도 한다.

하지만 당장 오늘 잠잘 곳을 찾지 못한 노숙인에게 그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 밤 거리에서 만난 최씨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최씨는 얼마 전 경제 한파로 일자리를 잃고 많은 부채를 떠안은 채 가족조차 뿔뿔이 흩어져버린, 말 그대로 실직노숙인이다.

“세상에 누가 노숙생활을 하고 싶어서 한답니까? 길거리에서 밥준다고 편한 생활한다고 하는데 길거리에서 벽보고 밥 먹어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누가 알아주나요.”

최씨는 그나마 거리에서 교회단체에서 제공하는 급식으로 끼니를 유지하며 건설인력회사를 전전하며 일자리를 물색하던 터였다. 주거지를 상실하고, 주민등록조차 말소되어 이력서조차 낼 수 없는 처지에서 산재보험조차 들어있지 않은 소위 ‘노가다’에서 그나마 생활비를 조달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마저 한겨울인지라 건설현장이 얼어붙어 일자리를 찾기 힘든 상태.

“주민등록을 살리려면 하다못해 주소 전입할 쪽방이나 고시원이라도 얻어야 하고, 십만원에 달하는 말소과태료도 내야하고…그게 다 돈인데 지금 제 처지로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요. 쉼터에라도 들어가려고 했는데 오늘 정원 다 찼다고 내일오라네요.”

노숙인에게 주민등록 말소는 사회복귀의 큰 장애물이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경우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조차 받을 수 없을뿐더러, 국민으로서 아무런 의무나 권리를 이행할 수 없는, 말 그대로 ‘행불자’로 처리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최씨같은 경우는 당장 일자리 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인지라 더 절실하다.

   
 
이미 자정이 지난시간, 쉼터 입소는 어렵고, 상담보호센터조차 만원인 상황에서 다시서기센터의 전문상담원은 최씨에게 일단 오늘 밤을 보낼 수 있는 쪽방을 지원하기로 했다.

최씨를 지원하기 위해 동행한 남대문 경찰서 뒤편의 쪽방촌, 쪽방은 열악하기 그지 없다. 한명이 겨우 누울만한 공간에 허름한 이불 한 채, 오래된 TV한대가 놓여있을 뿐, 여느 누가 봐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만한 공간은 아니다. 게다가 한겨울에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 바퀴벌레의 흔적들도 더러 보인다.

이런 방을 일세로 7,000원씩이나 받는다는게 이해할 수 없지만 오갈 데 없는 처지에 7,000원으로 차디찬 오늘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이마저 없다면 한파 속에 차디찬 바닥에 누워 알수 없는 내일아침을 기약할 수 밖에 없는 터였으니.

“그래도 이렇게라도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내일 주민등록 살리는 것부터 알아보려고요. 그럼 일자리 찾는 것도 수월해질테지요. 친척들 보는 것도 죄송해서 찾아갈 엄두도 안나고…. 빨리 이런 생활부터 접고 싶습니다.”

전문상담원은 내일 아침 다시서기센터에 반드시 와줄 것을 당부하고 쪽방촌을 나선다. 다시서기센터의 주거지원사업과 주민등록과태료 지원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듣고 나서야 최씨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지는 듯했다.

   
 

이처럼 노숙인은 거리에서의 응급구호부터 일자리지원, 주거지원, 신용문제 해결 등 다각적인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해결해 나아갈 때 비로소 사회복귀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다시서기센터는 이러한 문제에 봉착해 있는 노숙인들이 사회로 되돌아 갈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을 개발하여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센터는 최씨와 같은 거리노숙인의 보호 뿐만이 아니라 임시주거지원사업, 매입임대주택지원사업 등 주거지원사업과 일자리 제공을 위한 고용지원센터 운영, 노숙인 특별자활사업 운영 등 현장보호에서 일자리 지원, 주거지원 등 노숙인의 사회복귀를 위해 다방면으로 애를 쓰고 있다.

특히 자전거 재활용 사업이 눈에 띈다. 자전거 재활용 사업은 아파트 단지나 거리에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폐자전거를 수거해 수리하여 판매하거나, 지역사회 자전거 수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자활사업이다.

중요한 것은 자전거를 수리하는 인력이 노숙인이라는 것. 센터는 이 사업을 통해 노숙인 일자리 창출은 물론 자원재활용을 통한 환경오염 예방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이미 3년 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을 통해 4,000여대의 폐자전거가 재생되었고, 그 재활용자전거는 용산구 등 지역사회의 지역아동센터의 저소득 아동과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기증되기도 하였다. 이 사업의 자전거 수리인력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민준(가명)씨의 의지 또한 희망으로 가득하다.

“한때는 거리생활로 피폐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여기서 자전거 수리 기술을 배우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립니다. 제가 수리한 자전거가 우리 동네 어려운 분에게 기증되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나중에는 작은 자전거포를 운영하는게 소원이에요.”

다시서기센터는 서울시와의 협력을 통해 자전거재활용 사업단의 사회적 기업으로의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조만간 사회적 기업으로써의 자전거재활용사업단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 또한 멀지 않은 훗날에 김민준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자전거포에서 환히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분좋은 상상도 해본다.

정부의 사회복지제도의 마련, 민간의 후원이나 자원봉사 등 노숙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다시서기센터는 이를 위해 2005년부터 ‘성프란시스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철학, 글쓰기, 예술사 등의 인문학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5기생이 수료하여 벌써 100여명의 수료생이 배출되었다.

   
 

이 교육과정을 통해 노숙인 학생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치고 있다. 이들이 인문학과정을 듣는 이유는 집을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도 아니다.

노숙생활로 인한 자괴감과 수치심에 빠져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을 되찾고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함이다. 인문학과정을 담당하는 이종수 상담원은 “노숙인에게 필요한 것이 오늘 하루를 유지하기 위한 식사나, 주거 등 물질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기 자신을 찾는 방법을 깨우쳐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점에 착안한 서울시도 이와는 별개의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경희대, 성공회대 등 교육기관에 취약계층 인문학교육을 위탁하여 2년째 운영을 하고 있다. 인문학이 노숙인의 자활에 큰 힘이 된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이처럼 노숙인의 다시서기를 위해 민간단체와 공공기관이 다방면으로 헌신하고 있다. 하지만 노숙인을 대하는 사회적인 시선은 아직도 차갑기만 하다. 신분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범죄 용의자선상에 오르기도 하고, 노숙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일자리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어떤 정치인들은 노숙인을 지역에서 몰아내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한다. 마치 노숙인 문제가 환경문제인양 치부되는 듯한 사회적인 인식이 안타깝다.

노숙인이 돌아갈 곳은 우리 사회이고 사회구성원의 따뜻한 응원이 없이 그들이 사회로 돌아갈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아무리 좋은 복지정책이 전개될지라도 매서운 사회적 인식 속에서 진정한 노숙인의 사회복귀는 아직도 멀고 먼 길인 셈이다. 또한 최근의 열악한 경제 상황 속에서 경제적, 사회적 충격으로 인해 누구나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언론보도에 의해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노숙인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2010년 희망찬 새해, 전국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모든 노숙인들에게 뜨거운 희망을 안겨줄 사회적인 격려와 응원을 마음 깊이 기대해본다.

이정규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사회복지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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