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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빗당겨치기 기술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1 조회수406 추천수8 반대(0) 신고
 
 
 

예수님의 빗당겨치기 기술 - 윤경재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마르7,25-30)

 

 

성서 못자리 묵상 나눔을 진행하면 종종 자신은 하느님 체험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남들은 장미향을 맡았다든지, 병의 치유 체험을 했다든지, 기도의 응답을 들었다든지, 방언을 하게 되었다든지, 예수님이나 성모님 발현을 목격했다든지 등등 체험담을 이야기하는데 그런 체험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체험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부족하고 덜 익은 것 같아 죄짓는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그럴 때 되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런 체험을 한 분들이 부러우세요? 그런 특별 체험은 삶이 절박한 상황에서 주로 일어나는데요. 사고를 당했다든지, 암이 걸렸다든가 사업이 망했다든가 하는 어려운 처지를 당하고 싶으세요? 하고 반문하면 모두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에게 함부로 대하는 듯한 예수님의 태도는 어찌 보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망신을 주고 시험하는 말처럼 들리는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말씀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인생살이에서 곤경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의 예를 보면 하나같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뿐입니다. 하필 왜 이런 수모와 역경을 겪어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재해는 말할 것도 없고, 질병이나 사고도 역시 도통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런 상황을 맞으면 좋고 나쁨으로 규정하려는 생각을 먼저 떠올립니다. 선악(善惡)이나 유익의 개념으로 따져 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추론해내야 만족합니다. 죄를 지어서라든가, 자신이 스스로 실수를 저질러서 그런 불행이 찾아왔다고 단정 짓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욥기는 이런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의인 욥이 순식간에 수많은 재산을 잃고 사랑하던 자식을 여의었으며 제 몸뚱어리가 병고에 시달린 것이 정말 그의 죄 탓이었습니까? 욥기에서 욥을 위로하러 온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기는커녕 선악의 개념에 빠져 죄 없는 욥에게 죄를 물었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오히려 욕을 보인 것입니다.

노자는 이를 두고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우리에게 닥쳐온 처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입니다. 好,不好를 따질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모름”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 여인에게 보이는 태도도 이와 같습니다. 씨름 선수가 시합할 때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서 넘어뜨리는 기술과 비슷합니다. 황소처럼 접근하면서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는 선수를 넘어뜨리는 방법은 그의 힘에 맞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서 그가 생각하지 못한 급소를 건드려주는 것입니다. 

알쏭달쏭한 예수님의 말씀에는 선악의 개념에서 벗어나라는 요구가 담겨있습니다. 딸이 더러운 영에 든 불행이나 예수님의 엉뚱한 말씀도 무조건 거부하거나 옳지 못하다고 대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은 딸을 낫게 하겠다는 모성의 본능으로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들었습니다. 반항이나 거부가 아니라 好惡를 넘어서 자신을 낮추고 한 발짝 더 다가섰습니다. 자만심을 내세우고 옹골차게 굳은 마음이 아니라 유연한 자세로 대응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빗당겨치기 기술에 멋지게 걸려 주었습니다.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을 마루에 내동댕이쳤습니다. 사람들이 지키려드는 자신이라는 것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것을 그 여인은 알아챘습니다. 

그런데 뒤에 남은 우리는 이 대목을 읽고 묵상할 때 여전히 예수님의 의도와 진정성을 알아채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따져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시는 멋진 기술에 뻗대려고만 합니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이 보이는 유연성은 어려운 처지를 더욱 쉽게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불행은 세상에서 늘 마주치는 현실입니다. 그때 이미 당한 현실에 분노하거나 아니면 지쳐 회피하기보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상황을 역전시킬 기회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여인은 그 기회를 찾아 나섰고 또, 놓치지 않고 잡았습니다. 

미국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는 요사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출시하여 세계 IT산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 망해가던 애플사를 재건했으며 사양 산업인줄 알았던 음반시장을 새로운 변화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냈습니다. 그의 창의성도 역시 씨름의 빗당겨치기 기술을 잘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간이식과 췌장암 수술을 하였지만, 그 상황을 탓하거나 포기하지도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 졸업식장에서 후배들에게 “계속 주시하라. 머물지 마라(Keep looking, Don’t settle).”라고 축사를 남겼다고 합니다. 대학 다닐 돈이 없어서 6개월 만에 자퇴한 그가 존경받는 CEO가 되어서 남긴 말입니다. 

변화의 활로는 고착하여 머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사랑하며 빗당겨치기 기술을 펼 여유가 있는 자만이 얻어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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