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2.15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야고1,1-11 마르8,11-13
"인내(忍耐)의 대가(大家)들"
수 십 년, 아니 수 백 년의 아름드리나무들은
산전수전 다 겪어낸 인내의 대가들인
정주의 연로한 수도승들을 상징합니다.
하늘만을 바라보며
추위와 더위, 온갖 비바람 폭풍우를
항구히 인내하며 견뎌낸 아름드리나무들,
과연 인내의 스승들입니다.
예수님을 비롯한 모든 성인성녀들 역시 인내의 대가들이였습니다.
“주님께 바라는 너희가 모두, 굳세게 마음들을 가져라”(시편31,25).
늘 주님께 희망을 두고 살 때 굳센 마음, 굳센 정신의 인내력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는 자가 마지막 승리자가 됩니다.
삶은 대하기에 따라 선물도 될 수 있고 짐도 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낙관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로 인내하며 대하면
삶은 가벼운 선물이 되고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비관적이고 피동적으로 대하면
삶은 곧장 무거운 짐이 되어 버립니다.
살다보면, 또 많은 사람들의 처지를 듣다 보면
‘어렵다’ ‘힘들다’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오곤 합니다.
언젠가 젊은 조카사위의 믿음직스런 답변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직장일이 어렵지 않느냐는 물음에
조카사위의
“힘들어도 현실에 적응하며 최선을 다해야죠.”라는
긍정적 자세가 확고히 담겨 있는 짧은 답변에
든든함과 더불어 내심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사실 어렵고 힘들고 바쁘기로 하면
평생 우리의 삶은 어렵고 힘들고 바쁠 것입니다.
바쁘고 어렵고 힘들기로 하면
예수님이나 그 제자들, 그리고 모든 성인성녀들보다
더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이분들 대부분이 평생 휴식 없이 활동하며 병고에 시달렸지만
언제나 여유 있고 활기차고 기쁨에 넘쳤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인 기도시간만이 이분들께는 유일한 휴식이었고
죽어야 비로소 진정한 휴식이었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말 그대로 믿음의 시련입니다.
이런 저런 시련을 통과해가며
성숙, 성장하는 믿음이요 희망이요 사랑입니다.
시련 없이는 믿음과 희망, 사랑의 성숙과 성장도 없습니다.
하여 시련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교육하는 수단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온갖 인내로 시련을 통과하는 믿음이 참으로 절실합니다.
믿음의 시험인 시련을 통해 생겨난 인내력이
효력을 나타내면서
우리는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겨울, 봄, 여름 동안
온갖 풍상고초를 인내 로이 견뎌내며 익어가는 열매들처럼
시련을 통해 깎이고 닦여 둥글둥글 성숙하여 원만한 사람이 됩니다.
피동적으로 참아내는 인내가 아니라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능동적으로 용감히 겪어내는,
정중동의 역동적 인내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스트레스를 풀며 인내해야 영육의 건강이지
그냥 피동적으로 견뎌내는 인내라면 몸과 마음 감당하기 힘들 것입니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기쁘게 시련을 견뎌내는 믿음의 인내는
‘하느님의 전사(戰士)’인 우리 수도승들에게 으뜸 덕목이기도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떠한 길을 걷든 안정을 찾지 못하며
주님에게서 아무 것도 받지 못합니다.
새삼 항구한 인내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 희망을, 믿음을, 사랑을 둘 때 항구한 인내력입니다.
이런 믿음의 인내, 희망의 인내, 사랑의 인내에서 샘솟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아무리 하늘의 표징들이 널려있어도
‘믿음의 눈’ 없으면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과연 인내의 대가이자 탁월한 분별의 지혜를 지니신 분입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믿음 없는 세대의 하늘로부터의 표징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이들을 버려둔 채 미련 없이 당신의 길을 가시는 주님이십니다.
매일의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가 모든 시련을 잘 인내하며 기쁘게 통과할 수 있도록
좋은 믿음과 희망, 사랑을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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