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essed is he who perseveres in temptation,
for when he has been proven he will receive the crown of life
that he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Jas.1.12)
제1독서 야고보 1,12-18
복음 마르코 8,14-21
넓은 바다 한 가운데서 큰 배가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서서히 가라앉는 배에서 선원들은 구명보트에 옮겨 타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한 선원이 선실로 뛰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배가 완전히 가라앉기 직전의 위험한 순간에 보인 이 선원의 행동에 선장은 불만이 많았지요. 아슬아슬하게 뛰어나와 보트를 탄 선원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장은 그 선원을 향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목숨 걸고 가져온 것이 도대체 뭔가? 얼마나 귀한 물건이기에 그런 행동을 한 거야?”
선원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선원의 손에 들은 물건을 본 선장은 존경의 눈으로 그 선원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지요. 왜냐하면 선원의 손에는 나침반이 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넓은 바다 한 가운데서 방향을 알지 못하면 정처 없이 떠다닐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즉, 나침반이 없다면 가라앉는 배에서 무사히 탈출했다 해도 또 다른 위협을 만나게 되겠지요. 따라서 이 선원의 판단은 가장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어떤 위협의 순간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주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주님만이 우리 삶의 나침반이 되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지 못하고, 필요에 의해서만 주님을 찾고 있었던 우리였음에 깊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한 빵의 기적을 이미 체험했던 제자들은 또 빵이 없음에 걱정을 하지요. 이렇게 주님께 철저히 의지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이는 우리 삶에서 매 순간 많은 은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느끼지 못하면서 불평과 불만 그리고 걱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1독서의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줍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순식간에 상황이 반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위인은 “고통은 행복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고통이라는 입구가 무서워서 행복을 피하겠습니까? 그곳만 들어가면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행복이 있습니다. 따라서 내게 고통과 시련이 찾아온다면 그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느님께서 또 내게 선물을 주시려고 그런가 보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님께 청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선물인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동안은 타락하지 않는다(찰스 램).
제나라의 보물(‘좋은생각’ 중에서)
어느 날 제나라 위왕과 위나라 혜왕이 사냥을 갔다. 혜왕이 위왕에게 물었다.
“제나라에는 어떤 보물이 있습니까?”
“글쎄요...”
그러자 혜왕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위나라에는 지름이 한 치나 되는 진주가 열 개 있습니다. 죽 늘어선 수레 열 두 대를 비출 정도의 광채가 나지요.”
그러자 위왕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보물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내게는 단자라는 신하가 있는데, 그가 남쪽 성을 지키면 초나라는 감히 침범하지 못하지요. 혜자라는 신하가 둑을 지키면 조나라 사람들은 동쪽 황하에 고기를 잡으러 오지 못합니다. 또 검부라는 신하에게 서주를 다스리라고 했더니, 연나라 백성과 조나라 백성 7천 명이 그를 흠모해서 서주로 귀순했답니다. 그리고 종수라는 신하가 도둑을 단속하자 길에 떨어진 물건조차 줍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들이 바로 제나라의 보물로, 천 리 길을 비추고도 남지요. 어찌 겨우 수레 열두대를 비추는 진주와 견주겠습니까?”
위왕은 제나라를 지키고 빛나게 하는 건 보물이 아니라 ‘인재’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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