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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폭력저항과 비폭력저항>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18 조회수365 추천수2 반대(0) 신고
 

<폭력저항과 비폭력저항>


삼십 년도 더 전 일이다.

한 밤중이었다.

우리 집 대문을 쾅쾅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내 동생 재균이가 문을 열고 나갔다.

어떤 시커먼 커다란 사람이 서 있었다.

술내가 풍겼다. 곧 우리 집을 들이칠 기세였다. 

아마 건축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은

사람이었으리라는 기억이 난다.

술이 좀 취했던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냥 쳐다보고 있는데,

태권도 2단인 재균이가

그 사람한테 냅다 발길질을 했다.

그 사람은 쓰러질 듯 비실비실 물러났다.

아버지는 나보다 재균이가 더 듬직했을 터다.

그러나 나라고 비겁하기만 했을까,

그 사람을 막걸리 집으로 데려가

자초지종을 따지고 해결책을 모색했을 것이다.


미국에 대한 9,19 테러, 그 태러에 대한 태러가

이라크 전쟁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우리는 간디, 마르딘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저항을 지지한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지지한다.

단식투쟁, 촛불시위 등을 지지한다.

온 국민이 함께 동참할 수 있는

시위방식(일례로, 서명하기, 리본달기,

국기게양하기 등)을 지지한다.


그러는 우리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살해한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의거라고 부른다.

천주교 신자들은 안중근 의사를

자랑스런 신앙의 선조로 받들고 있다.

폭력저항과 비폭력저항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일제시대에 독립군은 자기희생을

무릅쓴 거룩한 사람들일테니까.


천주교 사회교리에서는

가능한 비폭력저항수단을 모두 동원하기 전까지,

폭력저항은 최후수단으로밖에 정당성이 없다고 가르친다.

침략폭력에 대한 정당방위 폭력도

폭력일까? 침략폭력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바친

국군용사들도 폭력주의자였을까.

한편, 입대거부자들, 집총거부자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는 그들을 평화주의자,

근본적 이상주의자로 존경한다.

모든 사람이 집총을 거부하면 당장 전쟁이 없어질테니까.

예수도 집총거부자였을까.

그러나 예수를 닮겠다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는 총을 들었다.

구약성서에도 전쟁 이야기가 숱하게 나온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을 대주라던

예수도 재판정에서는 당신 뺨을 치는 병사에게

거친 말로 대들었다. 그냥 놔두면 그 병사가

깨우치지 못할 테니까.


불의한 정권, 불의한 정책에

저항하는 데는 비폭력저항만이 정당할까.

폭력저항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까.

동학농민전쟁, 4․19 혁명, 5․18 광주민중항쟁을

성전(聖戰)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한 가지, 야만의 세월이 지나가기까지는,

군대, 무기, 전쟁이 존재하는 비인간 세상이 끝나기까지는

북한 군대와 남한 군대가 병신처럼 서로 으르렁거릴 게 아니라

힘을 합쳐 외적의 침략에 대비해야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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