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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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대 | 작성일2010-02-19 | 조회수61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오 9:14-15) 옛날 유대인 신혼부부는 결혼식이 끝난 주일에는 친구들과 이웃들과 친척들로부터 왕이나 여왕취급을 받았다. 이 기간 동안에는 금식하지 않아도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이 기쁜 피로연 시기에 비유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사순시기는 “금식 시기”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또 마지막 날에 영광 속에서 재림하시는 것을 “준비하는 시기”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 상당한 경쟁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요한의 역할을 끝내고 요한이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제자들의 경쟁심리를 끝내게 한다. 오늘의 복음에서도 이런 경쟁심리를 어렴풋하게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인 요한이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자신들을 대단한 사람들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한 말을 통하여 제자들이 자만심을 더 이상 갖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누구나 경쟁심을 갖고 있으며 아무데서나 경쟁심을 일으킨다. 예를 들면 벽을 기어오르는 두 마리의 파리를 보고도 경쟁심을 일으킨다.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말대로라면 요한의 제자들은 그들의 스승이 순교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졌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피로연에 가시지 않았던 것 같지만 제자들은 간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피로연에 가시지 않고 기쁨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힘들게 신앙을 갖도록 하시지는 않았지만 고통이나 슬픔을 피하시지 않았다.
고통이나 슬픔을 피한다고 기쁨이 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프거나 슬픈 마음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만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피하기 버릇하면 평생 피하면서 살게 되며,
기쁨은 없고 끝없이 도망치는 삶을 살게 된다. 어느 정도는 행복할 수는 있지만 잠시일 뿐이며 기쁨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기쁨이 없는 신앙은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증거이다.
부활할 생각이 없으면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 된다.
사도 바오로는 성령의 열매로 사랑 다음으로 기쁨을 꼽았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갈라티아 5:22-23)
자기 자신 안에 사랑이 없으면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 안에 기쁨이 없으면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그밖의 성령의 열매가 자기 자신 안에 없어도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미국 성공회 주교 아서 리히텐버거(Arthur Lichtenberger, 1900-1968)는 자신의 삶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다른 사람의 비난을 들으면 금식하고 다른 사람의 칭찬에 기뻐한다.
자기 연민이 생기면 금식하고 기쁨을 맘껏 즐긴다.
자신의 성급함에 금식하고 평화를 기뻐한다.
후회하면 금식하고 만족하면 기뻐한다.
질투하고 나면 금식하고 겸손하면 기뻐한다.
교만하면 금식하고 사랑하면 기뻐한다. 이기심에 금식하고 봉사하고 나면 기뻐한다.
두려워하면 금식하고 믿음에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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