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괴 성모님 순례지 김웅열 신부님
春雪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찬미예수님
감곡 매괴성당의 뿌리는 루르드에 있습니다.
교황청 내사령에 의해서 전대사를 받는 성당으로 지정이 되었고
2월 2일부터 내일(2월 11일)까지 전대사 미사가 봉헌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숫자를 헤아려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오신 분들이 약 만 오천 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성모님 성지에서 사순 제1주일 미사를 봉헌하며 전대사라고 하는...
교회가 베푸는 커다란 은혜를 입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복음 서두에 나오는 두 가지 상징적인 단어에 대해 이해하고 묵상해 봅시다.
복음 서두에 광야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성령께서 예수님을 어디로 내모셨다구요?
<광야>
거기서 악마의 유혹을 받았다!
그렇다면 성령이 예수님을 악마랑 만나게 했느냐?
그건 아닙니다.
성령이 하신 일은 광야로 예수님을 인도한 것뿐이었고
바로 거기에서 악마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 성서 구절을 잘못 읽으면 성령이 마치 악마를 준비시켜놓고 예수님과
맞닥뜨리게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원문을 보면 악마가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아주 의미심장한 단어
‘광야’
광야는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광야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만남의 장소로 등장합니다.
두 번째, 유혹과 시련의 장소로 등장합니다.
첫 번째가 무슨 장소라구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만남의 장소’
광야에 나가서는 다른 사람을 만날 일이 없습니다.
광야는 삭막하기 이를 데 없죠?
거기 가서 무슨 놀이를 할 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하늘과 광야와 자기뿐입니다.
광야는 인간이 생존하기가 무척 어려운 장소이지만
놀랍게도 인간의 몸이 견디기 어려운 그 광야에
전 세계의 유명한 수도원은 다 모여 있습니다.
수많은 성인성녀들이 광야에서 나왔습니다.
廣野는 일교차가 매우 심하여 사람의 몸이 견디기 어렵지요.
밤엔 춥고, 낮엔 덥고,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생존능력이 강인한 곤충들밖에 살 수 없는 그곳에서
철저하게 홀로 됨으로써 고독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는 겁니다.
몸이 불편해지면 한동안은 영도 불편해지지만
그 시기를 견디면 영이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단식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영도 힘들어하지만
일단 어느 시기를 지나면 육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성서에 나오는 광야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고독한 장소입니다.
비록 시끌벅적한 도시 한가운데 살아도
우리 신앙인들은 자기의 광야가 있어야 됩니다.
사제도 자기의 광야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광야는 뭡니까?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요,
성체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광야입니다.
복잡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퇴근하면서 성당에 들러 저녁미사를 보고
성체 앞에서 단 오 분, 십분이라도 기도할 때...
그 사람은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게 바로 광야입니다.
사제도 아무리 일이 많고 피곤하다 하더라도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나서
하느님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지 않으면 신자들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으로 살아가려면 누구나 나름대로
하느님을 만나는 광야를 준비해야 됩니다.
성서의 광야는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두 번째, 광야는 유혹과 시련의 장소입니다.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몇 년을 헤맸습니까?
사십년을 헤맸습니다.
그 사십년을 헤매면서 얼마나 많은 우상숭배에 빠졌습니까?
광야는 인간의 본능 상 뛰쳐나가고 싶은 장소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아무 재미가 없는 데가 광야입니다.
놀 거리도 없고, 볼거리도 없고, 먹을거리도 없고, 들을 거리도 없는 데가
광야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살면서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광야는 우상숭배가 드글드글대는 그런 유혹의 장소입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해서 늘 불평불만을 갖게 하는 장소가 광야입니다.
유대인들이 배고파 죽으려고 할 때 모세의 기도에 의해 하느님은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때 다른 명령은 하지 않으시고 딱 한 가지만 지키라 그랬죠?
그날 먹을 것만 가져가라!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만나가 하얗게 내리니까 내일 먹을 것까지 잔뜩 집어갑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음날 보니까 다 썩어있더라!
욕심쟁이 인간들은 다음날 먹을 거, 그 다음날 먹을 거....
탐욕스럽게 움켜쥐다가 그 다음날엔 아무것도 먹질 못했습니다.
광야라고 하는 것은 이런 유혹의 장소입니다.
마귀가 드글드글 대는 장소입니다.
이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을 꾀어서 마귀는 자기의 하수인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오늘 두 번째 우리가 묵상해야 할 단어는 악마!
‘악마’
악마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를 창조하셨다 그랬지요?
천사 중에는 4대천사가 있어요.
가브리엘, 라파엘, 미카엘, 루치펠.
루치펠이 제일 능력을 많이 갖고 있는 천사인데
‘루치펠’의 뜻은 ‘빛을 지니고 있는 자’ 입니다.
4대 천사를 군대식으로 따지면 ‘육군참모총장’ 정도...
그 중에 제일 계급이 높은 천사가 루치펠이었습니다.
‘빛을 지니고 있는 자’
오만 능력을 다 갖고 있었는데 그러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놈이 지 주제파악도 못하고....
주변에서 부치기는 놈들, 간신들이 있었지요.
“아이고, 루치펠 천사님! 대단하십니다. 그 정도 실력이면 하느님이랑 일대일로
맞짱 떠도 꿀릴 데 없을 것 같습니다. 한번 맞짱 한번 떠 보실려우?”
가만히 보니까 뭐 하느님이나 나나 실력이 비슷비슷 한 것 같애.
그래서 덤볐지요?
덤비다가 이겼습니까? 졌습니까?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에게 덤비다니~~
루치펠은 그 졸개들과 함께 천국에서 쫓겨납니다.
천국에 있을 때는 ‘빛을 지니고 있는 자’ 라고 하는 그 아름답던 이름이
천국을 그래서 쫓겨나면서 부쳐진 이름이 ‘사탄’입니다.
사탄이라는 말은 ‘하느님께 대항하는 자’ ‘거역하는 자’ 라는 그 뜻이지요.
사탄을 한국말로 번역한 것이 ‘악마’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과 일대일로 맞붙은 놈은 졸개 마귀가 아니라
천국에서 <루치펠, 빛을 지닌 자> 라고 하는 명성을 가졌던 마귀 중에서 최고의 두목,
사탄 바로 그 악마가 예수님과 일대일로 맞붙은 겁니다.
그 악마의 졸개들을 한국말로 ‘악령’ ‘마귀’ ‘악신’ 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우들은 악마, 마귀, 사탄이 다 똑같은 걸로 알지만 다릅니다.
천사의 등급이 있듯이/ 천사의 이름이 있듯이
사탄도 그 힘의 종류가 다릅니다.
악마 중에 최고로 센 사탄이라고 하는 그놈이 오늘 예수님하고 맞붙은 겁니다.
하긴 졸개 악마가 성사와 맞붙을 수가 없지요.
권투선수도 급이 비슷해야만 뭔가 게임이 됩니다.
이 악마가 예수님께 감히 도전을 합니다.
악마가 예수님과 싸울 때 칼을 들고 싸웠어요? 아니면 주먹질을 했어요?
아니지요....성서 말씀을 가지고 덤빕니다.
마귀는 시편을 기가 막히게 인용했어요.
마귀는 능력자입니다.
입만 열면 성서구절이 좔좔좔좔~~ 나옵니다.
예수님의 얼굴로도 변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성모님의 망토를 걸치고
나타납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나주 아닙니까?
그 쪽에 얼씬도 하지 마십시오.
거기 주교님이 뭐라고 그러셨지요?
그곳에 가서 성사를 집행하거나 성사에 참여하는 자는 자동으로
파문이라고 그랬어요.
아시죠?
네!
파문당합니다.
파문은 교회가 신자에게 주는 가장 큰 벌입니다.
신자로써 모든 성사행위가 금지되고....자격을 다 박탈당하는 겁니다.
얼씬도 하지 마십시오.
사탄은 능력자입니다.
시편을 가지고... 성서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께 대들면서 유혹을 합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주야로 단식을 하였습니다.
영은 맑았지만 예수님이 얼마나 배가 고팠겠습니까?
그런 예수님께 “니가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예수님은 오랫동안 음식을 들지 않으셨기에 돌이라도 집어삼키고 싶으셨을 겁니다.
이런 예수님이 밥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마음만 먹으면 돌멩이 가지고 밥을 만드실 수 있는 분입니까? 아닙니까?
<만드실 수 있습니다.>
만드실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밥의 유혹이 크셨던 겁니다.
사탄은 아예 언감생심, 꿈도 꾸어보지 못할 것에 대해서는 유혹 안 합니다.
여러분들, 대통령에 대한 유혹 받아 보신 적 있어요?
우리 형제님, 대통령 되고 싶은 유혹 받은 적 있수?
사제 되고 싶은 유혹 받아보신 적 없지요?
아예 꿈도 꿔보지 못할 것 가지고는 유혹 안 해요.
그러나 우리 회장님, 대통령이 되고 싶은 유혹 받아 본적은 없어도
동네 이장님 되고 싶은 유혹은 있지요?
다시 말하면 내가 눈 한 번 질끈 감고 손만 딱 내밀면... 내 손에 잡힐 수
있는 바로 고것 가지고 유혹해요.
“니 손 한 번 내밀어 그러면 네 손에 잡혀....”
내 차원과는 전혀 다른 것 가지고는 아예 유혹하지 않습니다.
얻지 못할 것에 대해서....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유혹이 생기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눈 한 번 질끈 감으면 달콤한 것이 생길 때
그 유혹을 물리친다는 것이 정말 힘들지요.
우리 주님은 눈앞에 있는 바윗덩어리 가지고 통돼지 바베큐를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 예수님에게 ‘이 돌멩이 더러 빵이 되게 해 봐라!’
환장하는 겁니다.
“빵 돼”
빵이 됩니다.
그러니까 힘들지요!
사탄은 밥으로 예수님을 능력의 남용에 대한 시험을 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공무원이면 공무원...각 자가 어느 단체에 있든지...
뒷거래가 있고 때로는 많은 유혹을 받습니다.
“한 번 받아...괜찮아~~괜찮아~~ 이것 좀 봐 줘!”
하긴 뭐 입을 싹 닦으면 아무도 모르지요.
바로 그런 걸 가지고 유혹합니다.
먹는 데에도 여러 질과 층이 있을 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뭘 가지고 먹느냐!
보리 개떡을 가지고 먹느냐! 아니면 고기 반찬해서 먹느냐!
밥에 대한 유혹은 항상 재물에 대한 유혹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끝없이 집요하게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끊임없는 밥의 유혹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악마를 물리치셨어요?
‘사람이 빵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물질에 대한 유혹이 강하게 올 때 여러분, 성서를 펼치십시오,
피정 테입을 트십시오.
그 유혹,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다.>
첫 번째 빵에 대한 유혹이 통하지 않자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데로 데리고 올라가서
“니가 하느님이거든 여기서 뛰어 내려 봐라! 천사가 사뿐히 너를 받들어 줄 것이다!”
두 번째 유혹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예수 당신, 그대가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니 자신을 보여 봐라!
니가 얼마나 잘날 사람인지 한 번 과시해 봐라! 너는 분명히 그럴 수 있잖아...
성자인데....천사가 아무려면 너를 죽게 하겠느냐... 뛰어 내려 봐! 너 대단한 사람 아니야?”
자기를 높이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자존심과 자만심의 유혹입니다.
요즘 신문에만 안 났을 뿐이지.....많은 아이들이 자살을 합니다.
흐름이 있어요.
어른들을 유혹하다가 사탄은....작전을 바꾸었어요.
이제 아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혼냈다 해서 유리창 확 열고 15층에서 뛰어내립니다.
성적 나쁘다고 뛰어내립니다.
그 아이가 자기 힘으로 뛰어내린 것 같습니까?
“너, 뛰어 내려 봐, 기분 좋을 거야!
마치 사탄이 예수님에게 “너 뛰어내려봐 천사가 받들어 줄 거야!”
이렇게 유혹했듯이.... 마귀가 아이들을 유혹합니다.
자존심이 상처를 받으면 밥의 유혹보다 더 큰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이 자존심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서 때로는 비열하고 위선적인 삶을 살 때가 있습니다.
내 자존심 상하게 했으니 너도 한 번 당해 봐라!
내가 어떤 인간인지 몰라? 내가 얼마나 잘나고 너보다 능력이 있는데...
감히 너 같은 놈이 나를 가지고 업신여겨? 너 한 번 당해 봐라!
두 번째 유혹은 예수님의 자존심, 자만심을 부추기는 유혹이었습니다.
세 번째, 악마는 나에게 절을 하라고 그러지요?
저 모든 권세, 영광 너에게 주겠다.
남을 내 뜻에 따라 움직이게 하려는 유혹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지를 내가 마음대로 가지고 놀려고 하는 유혹입니다.
권력에 대한 욕망 역시 밥에 대한 욕망처럼 원초적인 것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높은 사람이 되고 싶고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마약의 유혹보다 강합니다.
이것은 권력을 쥔 소수의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어느 철학자는 생물이 존재하는 곳에 온갖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집안에서도 남편이... 아버지가 우격다짐으로 권력을 휘두를 때가 있습니다.
사제들도 그런 유혹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어느 단체든지 뭔가 자기 힘으로 누르려고 하는 것은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권력에 대한 욕망을 타고 났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휘두르고 삽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더욱 큰 권력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지요?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에게는 냉혹하게, 소유하려 하고, 지배하려 하고....
힘 센 사람에게는 또 얼마나 비굴하게 꼬리를 내릴 때가 많습니까?
교우 여러분들, 우리는 늘 인생의 광야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갈 때까지 단 한시도 우리의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유혹의 연속입니다.
밥과 재물에 대한 유혹, 권력에 대한 유혹, 자존심의 유혹...등이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고 합니다.
때로는 그 유혹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아마도 자주.... 이길 때보다는 질 때가 많음을 절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광야에서
예수님이라고 하는 나침반의 도움으로
성령의 도움으로 광야를 바꾸어야 합니다.
광야는 유혹의 장소, 시련의 장소이지만 우리들이 어디를 쳐다보느냐에
따라서 이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임을 믿습니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ㅡ2008. 02. 10(사순 제 1주일)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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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雪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낮엔 해 처럼 밤엔 달 처럼>음악 김웅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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