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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28일 야곱의 우물- 루카 9,28ㄴ-36/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2-28 조회수422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28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29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30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32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33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34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35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36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기도
오소서, 성령님. 거룩하신 주님의 영광을 마음에 새기고 어둠 속에서도 그 빛으로 살 수 있게 이끌어 주소서.

독서
어느 날 예수님은 세 제자에게 기도하러 산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이것은 평범한 일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 어떤 체험을 하게 될지 전혀 모른 채 따라 나섭니다. 그렇지만 이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보고 듣게 될 것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산에서 베드로는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것이며(33절), 산에서 내려온 다음에도 제자들은 자기들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할 것입니다(36절). 아직 아무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 이고(31절), 둘째는 “예수님의 영광” 입니다(32절).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서로 떼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거룩한 변모의 신비입니다.

먼저 제자들은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이 빛나는 것을 봅니다. 옷이 희게 빛난다는 것은 감추어져 있던 예수님의 신성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으로 육화하신 예수님과 함께 지내던 제자들이, 그분이 본래 지니고 계셨던 신성의 빛을 잠시나마 눈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를 대변하는데,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루카는 24장에서도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셨다고 말하는데, 그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 이었습니다(24, 26 – 27). 예수님의 죽음은 그분께서 ‘이루실’ 일, 곧 하느님의 뜻에 따라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며 행하셔야 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저 수동적으로 그 죽음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실 일’ 이라고 번역된 단어에 잠시 머물고 싶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단어는 ‘엑소도스’ 입니다. 떠남 · 나감이라는 의미인데, 이집트에서 ‘탈출’ 한다는 것과 동일한 단어지요. 여기에서 이미, 이것이 다만 ‘세상을 떠남’ 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방 사건,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반이 되는 새로운 파스카, 부활을 내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을 보면서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그는 자신이 머물 초막이 아니라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머물 초막을 지으려 합니다. 이집트 탈출 과정 중에 이스라엘을 동반했던 장막 성소가 그러했듯이, 초막은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대답도 하지 않으십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영광이 최종적으로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앞날에 대한 예고로 계시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리 2, 6 – 7) 이것이 앞으로 제자들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목소리도 신적 영광과 순종으로 받아들인 죽음 두 가지 모두를 말씀하십니다. 한편으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세례 때에 하느님께서 예수님 자신에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이라고 하셨다면(루카 3, 22), 지금 하느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이는 내 아들” 이라고 하십니다(35절). 그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사실이 제자들에게 순종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그의 말을 들어라.”)

다른 한편으로 “내가 선택한 아들” 이라는 표현은 주님의 종의 노래에서 사용된 것으로(이사 42, 1), 예수님도 고통 받는 종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주님의 종은 하느님께서 선택한 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이지만,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53, 10),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53, 5)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제자들한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됩니다.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십자가의 길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성찰
예수님의 신적 영광을 드러내 보이는 동시에 그분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을 알려주는 이 거룩한 변모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두 가지를 모두 그분이 하느님께서 ‘선택한 아들’ 이라는 것에서 이해하게 합니다. 수난의 의미는 부활에 비추어서야 이해될 것입니다. 그때 아드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너희는 내 얼굴을 찾아라.’ 하신 당신을 제가 생각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 얼굴을 찾고 있습니다.” (시편 27, 8)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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