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걱정과 불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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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웅열 | 작성일2010-03-04 | 조회수64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걱정과 불안.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우리의 생각과 느낌들, 욕구와 고통들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은 우리의 느낌과 고통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격정과 불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주의 깊게 듣는 다면, 우리는 그 음성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본래 계획하셨던 우리의 정체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정서와 고통들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고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화, 짜증, 시기심, 그리고 의욕상실 등과 같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느낌들에 대하여 당황하고 자신을 부정적으로 판단한다. 아리로부터의 영성은 나에게 다가오거나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들과 정서들과 화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나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나는 스스로 그러한 요소들 안으로 들어가서 그것들이 나에게 말하고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봐야 한다. 격정과 분노는 나를 다치게 한 그 다른 사람을 나에게서 떼어내는 힘이며, 그래서 그와 적당하고 건전한 거리를 유지 하도록 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가까이 있었던 그를 떼어 놓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와 화해 할 수 있으며, 그에게서 참으로 자유로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격정과 분노가 삶에 대한 애착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격정과 분노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나를 하느님께 내어드리도록 끊임없이 자극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아리로부터의 영성은 언제나 세 종류의 길이 있다. 첫째는 생각과 느낌들과의 대화하는 것 이다. 둘째는 밑바닥까지 아리로 내려가 더 이상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최종점에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는 것, 그리고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다. 셋째는 하느님께 완전히 항복하는 것, 나의 힘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하느님의 좋으신 섭리와 품에 나를 완전히 내 맡기는 것이다. * 불안과 걱정이 없다면 우리는 절제도 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과 걱정의 긍정적인 반응- * 불안과 걱정이 없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무리를 할 것이다. -불안과 걱정의 부정적인 반응- 걱정과 불안은 내가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용기를 내어 뛰어 들어 가야하는 깊은 심연이다. 결국 그 걱정과 불안 속에서 하느님을 굳게 붙들고 있게 하며, 다음의 성경구절을 소리 내어 읊어야 합니다.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이 없나이다.”(시편22,4) “주 함께 계시거늘 무서울 것 있을쏘냐, 인간이 나에게 무엇을 할까보냐?”(시편117,6) 참고한 글 “아래로부터의 영성” Anselm Gruen 신부.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격정과 분노 그리고 걱정과 불안, 이 모든 것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들을 통해 주님을 바라볼 수있는 기회로 생각하여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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