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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15 조회수1,062 추천수1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3월 15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Jesus said to him,
"You may go; your son will live."
The man believed
what Jesus said to him and left.
(Jn 4,43-54)

 

 
명예, 지위, 돈,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과 기자들은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지요. 그는 평소에 강의나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등장하자마자 칠판에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1,000억!”

그리고 말을 시작했습니다.

“전 재산이 아마 천 억은 훨씬 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지요.

“여러분, 이런 제가 부럽습니까?”

“네!”

여기저기서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그는 웃으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 이런 성공을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1,000억 중에 첫 번째 0은 바로 명예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0은 지위입니다. 세 번째 0은 돈입니다. 이것들은 인생에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앞에 있는 1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1은 건강과 가족입니다. 여러분 만일 1을 지우면 1,000억이 어떻게 되나요? 바로 0원이 되어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명예, 지위, 돈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그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건강과 가족이 없다면 바로 실패한 인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지금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 보세요. 나를 있게끔 한 것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부차적인 것을 더욱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그 부차적인 것을 위해서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 복음에서 보면 한 왕실 관리가 예수님께 자기 아들을 살려 달라고 청합니다. 분명히 예수님 보다 세속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아들을 고쳐 주는 것을 미루려고 하지요. 어떻게 보면 자신의 명예가 손상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께 명예와 지위를 내세우기보다는 간절히 매달릴 뿐입니다. 바로 자신의 명예나 지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위해 부차적인 것을 포기하는 그의 모습이 예수님의 기적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면서 순간에 불과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이 아닌 자신을 있게끔 하는 중요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소원


무득 어렸을때 가졌던 소원들을 떠올려 봅니다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쓰게 해 달라는 소원, 키가 커서 맨 뒤의 자리에 앉는 것이 싫어서 키 좀 크지 않게 해달라는 소원, 공부하는 것이 싫어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받게 해달라는 소원,남 앞에 서면 벌벌 떨고 말을 하지 못해서 이제 자신감을 갖고서 떨지 않게 해 달라는 소원, 신부님이 되게 해 달라는 소원, 복권 1등에 당첨되어 우리 집에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소원, 옆집 친구보다 더 많은 장난감을 갖게 해 달라는 소원들...
참으로 많은 소원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소원들을 간절히 기도하곤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제가 가지고 있었던 소원들은 저에게 꼭 필요한 소원이라고 생각했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떄문이었지요
하지만 지금 와서는 '그때 왜 그런 소원들을 가지고 주님께 기도를 바쳤었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도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즉,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소원도 참으로 많이 빌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잠시 앞도 바라보지 못하고 그 순간에 부족한 것만을 가지고 주님을 귀찮게 했던 것은 아닐까 싶네요.


이제야 조금이나마 알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소원과 꿈을 그렇게 열심히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는 이유를 말이지요. 바로 우리 각자 각자를 위해서입니다
한치 앞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따라서 우리들을 더욱 더 좋은 쪽으로 이끌어 주시려는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소원과 꿈을 때로는 과감하게 들어주지 않으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계속해서 말도 않되는 기도를 하고 있고, 또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주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주님의 마음도 헤아릴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Devotion - Ralf E. Bartten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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