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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마리아를 사랑하여야 하는가 - 성모 마리아와 성체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3-19 조회수421 추천수3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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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왜 마리아를 사랑하여야 하는가 - 성모 마리아와 성체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퇴보할 때 성체에 대한 신심도 따라서 퇴색된다.
프로테스탄적 항거는 주님의 성체 현존에 대한 신앙도 무시하였고 그리스도교의 핵심인 미사 성제도 폐지하였다. 그들은 마리아를 구원 계획에 있어서 불필요한 액세서리로 전락시켰다.
사실 교회 안에서 마리아가 맡으신 역할은 완전히 우리를 당신의 천상 아드님께 이끌어 가는 것이다. 마리아를 무시하면 그녀의 아드님에게 이르는 가장 빠르고 가장 쉬운 길이 막혀 버린다
.

오늘날에도 하느님이 성체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주님께 별다른 공경을 드리지 않고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선언한 분은 교황 바오로 6세였다.
교황은 1967년 파티마 성지를 방문하고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항상 권고했다
.
교황은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라는 성체께 대한 대회칙까지 반포했다. 이 회칙 마지막 페이지에서 교황은 마리아와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사이에 끊어질 수 없는 연관성을 강조하셨다.

성모호칭기도에서도 성모님을 "계약의 궤"라고 부른다. 구약에서 계약의 궤는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곳이었다. 마리아는 태내에 거처를 정하셨던 성삼위의 제2 위격인 새로운 궤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우리 주님의 첫번 째 감실이 되셨던 것이다.

성체에 대한 흠숭을 증진시키려고 수도회를 창설한 성 피터 쥴리앙 에이마르는 자신의 영성적인 자녀들에게 마리아를 설교하고 성체의 성모라는 이름으로 마리아를 공경하라고 일렀다. 또 성인은 "여러분이 영성체를 통해서 여러분 안에서 마리아가 활동하실 수 있게 하면 할수록 그 만큼 더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했다.

마더 데레사가 소속한 수도회의 수녀들은 하루에 1시간씩 제대 위에 현시된 성체를 흠숭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집없는 사람들이나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아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언제나 묵주기도를 바친다.
마더 데레사는 모든 위험에서 수녀들을 보호해 주시는 분은 성모님이라고 했다. 마더 데레사와 그 수도자들이 매일같이 희생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뿌리에 대해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중노동입니다. 아침마다 미사에 참여하고 또 영성체를 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멘의 수상께서 우리 수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신부님 한 분을 함께 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수녀님들을 보내드리겠다고요. 수상님은 제안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예멘에서는 800년만에 미사가 봉헌되고 성체를 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에게서 항상 힘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단 한 주간도 일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들 모두는 빵의 형상으로 제대 위에 계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또 그분을 뵈올 수 없는 한, 가난한 이들의 모습으로 고통을 당하시는 그분을 찾아 뵈올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모님이 1830년 파리의 뤼 드바에서 현대 성모님의 발현중 처음 발현하셨을 때, 성녀 카타리나 라부르에게 청하는 사람에게마다 풍성한 은총이 흘러 넘치는 제단 밑으로 다가오라고 하셨다. 이 때 성모님은 루르드의 발현 장소에 성당을 하나 세우라고 하셨다. 이것도 물론 감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함께 그 곳에서 성찬 전례가 거행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성지 어디서나, 그 분은 단독으로 공경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은 모든 순례자들의 발길을 제단 앞으로 이끌어 가신다. 이것도 그들이 당신의 천상 아드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파티마에서는 평화의 천사가 먼저 프란치스꼬와 히야친따와 루시아에게 나타났다.
때는 1916년, 그는 후에 있을 하자없으신 마리아의 발현을 준비하는 사명을 띠고 있었다. 세 아이에게 황홀한 모습으로 세 번째 나타났을 때, 천사는 손에는 성작을, 그리고 성작 위에 위치한 오른 손에는 성체를 들고 있었다. 이 성체에서는 핏방울이 흘러 성작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천사는 성체와 성작을 공중에 놓아두고 땅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기도를 세 차례 바쳤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이시여, 겸손되이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이 세상 모든 감실 속에 현존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고귀한 몸과 피와 영혼과 신성을 성삼께 바쳐 드리오니, 이는 그분이 받으시는 모욕과 독성과 무관심을 보속하기 위함이나이다.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의 영원한 공덕으로, 또한 마리아의 하자없으신 성심의 중재로 청하오니, 불쌍한 죄인들이 회개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를 마치고 나서 천사는 땅에서 일어나 성작과 성체를 손에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성체를 루시아에게, 또 성작에 들어 있는 것을 히야친따와 프란치스꼬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심하게 모욕을 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셔라. 그리고 저들의 죄를 보속하고 너희 하느님께 위안을 드려라."

프란치스꼬가 이 말씀을 얼마나 감명깊게 받아들였느냐 하는 것은, 그의 생활 속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은 프란치스꼬는 학교에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성당에 남아 있으면서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이 받으시는 모욕과 독성과 무관심을 보속하겠노라 했다. 프란치스꼬는 자신이 "감추어져 계시는 하느님"이라고 불렀던 성체께 대한 사랑에 젖어 감실 앞에서 몇 시간씩이나 무릎을 꿇고 성체를 흠숭하곤 했다.

파티마의 성모님과 성체의 밀접한 관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성모님이 요구하신 조건 중의 하나를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 조건이란 다섯 달 동안 계속해서 첫토요일에 미사에 참여하고, 원죄없으신 마리아의 성심께 보속하는 뜻으로 성체를 영하라는 것이다.

성 피터 쥴리앙 에이마르에 의해서 5월 8일로 정해진 성체의 성모 축일이 파티마의 성모 제1차 발현 기념일인 5월 13일로 옮겨졌다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는 성모님과 성체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주님의 성체 현존에 대한 신앙이 위축되지 않게 하려면 하자없으신 마리아께 대한 참된 신심이 회복되어야 한다.
가톨릭 신자들이 성체와 성모님 사이에 신앙의 닻을 내릴 때, 어떠한 적의 세력도 파괴될 것이다.

(스카르가 신부님의 "성체현존" 중에서)
 




[3월 20일] 지극히 거룩한 생명의 말씀 '복음' <요한 7,40-53>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의 묵상]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바리사이들은 꾸짖듯이 니코데모를 몰아 부칩니다. 그는 예수님께 호감을 갖고 있던 바리사이였습니다. 예언자는 주님께서 보내시는 일꾼입니다. 이 간단한 진리를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어찌 주님께서 ‘장소’에 매달리실는지요? 어떤 지역이든 예언자를 보내실 수 있습니다. 빤한 이 사실을 그들은 망각하고 있습니다. 신심 깊은 사람들이 그렇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종교를 믿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신념이 아닙니다. 기술도 아니고, 전통도 아닙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따르는 행위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성경에도 있지만, ‘자연’ 속에도 있습니다. 바람 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언서의 말씀을 해독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끼면 ‘성경의 향기’는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현대판 바리사이’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성전 경비병들도 예수님을 알아봤습니다. 그들이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보다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갔던 것입니다. 지식이 때로는 ‘삶의 방해’가 됩니다. 많이 안다고 그만큼 잘 살거나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신심을 깊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식과 신앙심은 언제라도 별개의 것입니다.

<십자가와 성상을 가리는 풍속을 보존할 수 있다. 십자가는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을 마칠 때까지 가려 두고, 성상은 부활 성야 예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가려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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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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