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tell you about earthly things and you do not believe,
how will you believe if I tell you about heavenly things?
(Jn.3.12)
제1독서 사도행전 4,32-37
복음 요한 3,7ㄱ.8-15
어느 회사의 영업회의 시간. 영업팀장이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직원들을 심하게 나무라며 말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남긴 초라한 실적과 변명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이 당장 이 일을 그만 두더라도, 우리 제품을 판매할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금도 모집공고를 내면 지원자가 줄을 설 것입니다.”
이어 이 영업팀장은 자신의 말을 확인하려는 듯 프로축구 선수 출신인 직원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축구경기에서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선수를 교체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영업팀장의 이 질문에 갑자기 회의실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것은 당연했겠지요.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질문을 받은 축구 선수 출신의 직원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팀 전체에 문제가 있을 경우, 보통 감독이나 코치를 갈아치웁니다.”
영업팀장의 말이 맞는 것 같았지만, 생각해보니 축구 선수 출신 직원의 말도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개개인의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이 개개인을 모아서 조화를 이루고 더 큰 능률을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간부의 역할도 중요한 것이니까요. 따라서 누가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까요?
사실 남의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남의 탓을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은 주님 탓도 끊임없이 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 탓을 하면 할수록 주님께 대한 믿음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지도 못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니코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 믿지 못하는 우리들을 꾸짖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을 꾸짖는 것이지만, 지금 현대에도 이 완고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지요. 어쩌면 과거보다도 더 완고한 마음으로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며 불신의 마음보다 믿음의 마음을, 원망과 불평의 마음보다는 이해와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는데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
쉽게 믿는 것은 어른에게 약점이지만 아이에게는 장점이다(C.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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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벌주는 방법
초대 교부 크리소스토모에게 '신앙을 포기하라'는 로마 황제의 명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그는 황제의 명령을 듣지 않아 체포되었다.
“그놈을 독방에 처넣어라.”
“안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독방을 더 좋아합니다.”
“왜 그런가?”
“그들은 독방을 조용한 기도실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잔인무도한 악당들이 있는 곳에 집어넣어라.”
“그것은 더 안 됩니다. 악당들을 전도하여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끌어내어 목을 쳐라.”
“폐하! 그건 더욱 더 안 됩니다.”
“왜 그것도 안된단 말이냐?”
“그리스도인들은 순교를 최상의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도 헛일이옵니다. 그들은 순교할 때 울지도 않사옵니다. 오히려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그러면 그놈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Una Furtiva Lagr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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