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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3주일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17 조회수438 추천수14 반대(0) 신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묵상길잡이 : 믿음은 사랑으로 표현된다.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의 믿음을 확인 하며 사랑의 다짐을 받으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어떤가?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 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1.고기잡이로 되돌아간 제자들 선거가 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세상이 오는 양 들떠 바쁘게 쏘다니며, 목이 쉬도록 외치고 살맛이 나서 야단이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 여(與)와 야(野)가 바뀌고 나면 마치 한 때 꿈을 꾼 듯 풀이 죽어 옛날의 일상으로 되 돌아가는 이들을 가끔 본다. 갈릴 레아의 어부들이었던 예수의 제자들도 3년 동안 스승의 능력에 감탄하며 그분의 말씀에 넋을 잃고, 이스라엘의 영광과 출세를 꿈꾸며 예수님을 따라 다녔다. 그런데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던" (루가 24,21)그 예수는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숨졌고, 무덤에 묻혔고, 큰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아 버렸다. 그러니 이제 갈릴레아를 비롯하여 온 이스라엘을 떠들썩하게 했던 「예수 사건」은 아주 끝나버린 것으로 보였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서 보듯이 제자들은 각자 낙향(落鄕)을 했고, 오늘 복음이 전해주는 대로 그들은 다시 옛날의 고기잡이 어부로 돌아가 있었던 것이다. 2.부활한 예수의 발현은 제자들을 다시 예루살렘에 모이게 하였다. 실망하여 옛 일터로 되돌아간 예수님의 제자들이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 서는 여러분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를 다시 일으키셨습니다."(제1독서; 사도5,30)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외치며 순교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걸고 예수의 부활을 외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의 발현을 보았기 때문이다. 성서의 기록을 보면 예수의 발현은 바오로 사도의 개종 때까지 2년여에 걸쳐 예루살렘, 갈릴리, 다마스쿠스 등지에서 여러 차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부활한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한 제자들은 마침내 부활한 예수가 들어간 그 영원한 세상에 눈뜨게 되었던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길 수 있었고",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게"(사도5,41)되었고, 그래서 사도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였고,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기 위해 생명까지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 3.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떼를 맡기시며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신다. 마치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도 "진짜야? 정말이지?"하면서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들 사이의 대화를 방불케 한다. 항상 행동보다 말이 앞섰고 또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거듭거듭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다. 사랑은 믿음의 표현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시는 예수님의 물음은 바로 "너는 나를 믿느냐?"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부부 사이도 친구 사이도 서로를 믿고 신뢰하게 될 때 그 신뢰는 사랑으로 표현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와의 대화를 보면서 다시금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막연히 "나는 주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죄를 얼마만큼 지으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벌(罰)을 내리시고, 우리의 기도와 선행을 통한 공로가 얼마만큼 쌓이면 항상 축복과 상(賞)을 주시는 런 하느님을 생각한다. 마치 자동판매기 같은 기계적인 원리인양,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우주 만물을 움직이는 비인격적인 에너지(氣)인양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된 하느님은 전혀 그런 분이 아니시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시며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마음을 요구하시는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 물음에 구체적으로 '예', '아니오.' 하며 태도를 분명히 하기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하느님을 친구나 부모나 애인을 사랑하듯이 머리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하고 싶은 일을 참을 수도 있고, 하기 싫은 일을 기꺼이 할 수도 있는' 그런 자세로 매사에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의 나날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나의 시간과 능력과 마음을 바치고 있는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이 질문 앞에,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는가? 깊이 반성해볼 일이다. - 유 영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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