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붙인 노래, 부속가 노래를 한다. 노래를 잘하면 흥이 나고 더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누가 노래를 잘 보르면 '앙코르'를 청한다. 앙코르란 말은 '아직도 더', '다시 한번'이라는 뜻으로 계속 노래하기를 청하는 말이다. 노래를 잘 부를 때뿐 아니라 뜻깊은 자리에서는 노래를 더 많이 하게 된다. 덧붙여서 노래를 더 불러 분위기를 더 돋우고 그 자리가 더 의미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노래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따라 노래의 분량(횟수)과 그 정도가 달라진다. 우리는 계속해서 미사 전례 안의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입당송, 자비송, 대영광송, 화답송 등이 모두 '노래'이다. 더 나아가 복음 환호송, 거룩하시도다, 영성체송 등 앞으로 살펴볼 것들도 다 노래이다. 그런데 여기 평소에 눈에 띄지 않는 노래가 있다. '부속가'가 그것이다. 부속가는 덧붙인 딸림노래이다. 이 노래는 연중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지난 예수 부활 대축일에 이 노래를 부른 것을 기억할 것이다. 또 성령 강림 대축일에도 부속가를 부른다. 제 1독서 다음에 화답송을, 제 2독서 다음에는 이 부속가를 부르고, 복음 환호송(알렐루야)를 하고 복음을 선포한다. 그렇다면 이 부속가는 무슨 노래이기에 평소에 없던 것이 불쑥 나타나는가? 부속가는 9세기 경부터 프랑스 북부 프랑크 전례에서 처음 나타났다. 그 동기는 '알렐루야'의 운율에 별도의 가사를 붙여서 부른 것으로, 그날 축일의 전례를 교리적으로 잘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마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노래 가락에 어떤 다른 내용을 담은 가사를 실어서 바꾸어 부르는 것과 같다. 우리 나라 초대교회 때, 천주 공경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려고 우리 고유의 운율에 교리를 가사로 붙여 만든 '천주공경가'와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알렐루야의 운율에 붙인 노래이므로 알렐루야의 부속가인 셈이다. 이 노래는 그날 축일의 전례를 교리적으로 가르치기에 상당히 유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6세기경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개혁하기 전에는, 모든 축일의 미사에는 웬만큼 다 있을 정도로 많은 부속가가 만들어졌다. 그만큼 부속가는 미사에서 '대중적인 노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이 노래는 축일에 의무적으로 부를 만큼 중요한 노래가 아니었으므로, 대부분의 부속가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가사도 좋고 곡도 좋은 네 개만이었다. 곧 부활 대축일(Victimae paschali), 성령 강림 대축일(Veni Sancte Spiritus), 성체 성혈 대축일(Lauda Sion) 그리고 장례미사(Dies irae) 때의 것이다. 18세기에 성모신심과 더불어 '고통의 마리아 축일'이 전례력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 '통고의 성모의 노래(Stabat Mater)'가 덧붙어 다섯 개가 된다. 오늘날에 와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장례미사의 부속가를 제외하게 된다. 그것은 장례 예식에서 파스카의 특성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데에는, 종말과 심판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부속가가 적합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전례헌장, 81항 참조). 그래서 다시 네 개만 남게 되었다. 다만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 부속가를 부르는 것은 의무이며, 나머지는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미사 전례 총지침, 40항). 그리고 위치도 알렐루야 다음에 하던 것을 제 2독서 다음에 하도록 옮겼다. 그렇다면 왜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는 부속가를 노래하는가? 원래 부속가가 그날 축일의 주제와 관련되는 별도의 교리 내용으로 부연 반복되는 것이기에 사실 별로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 부속가를 노래하는 것은 이날들이 한 해의 전례주년 안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깊은 날이기 때문이다. 또 성령 강림 대축일은 예수 부활 사건의 완결이며, 우리 교회의 시작이다. 그래서 성령 강림 대축일은 그 축제의 성격이 부활 대축일의 것과 유사하게 발전해 왔다. 부활 성야 예절이 있듯이 전야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으며, 부활에 주던 그리스도교 입교(세례-견진-성체)의 완결 예식인 견진을 이때에 맞추어주기도 하였다. 부활이 신앙의 핵심이라면 성령 강림은 교회 생활의 근거인 셈이다. 그래서 이날 축제를 더욱 두드러지게 분위기를 돋우고 뜻깊게 하고자, 앞서 화답송을 노래했지만 '아직도 더' 노래하는 것이다. 연중 축제들 가운데 가장 큰 잔칫날에 '앙코르'로 한 곡 더 부르면 더욱 신나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노래하면서 마음을 모은다. 또 더 잘 노래하기 위해 마음을 모아 부른다. 노래를 하면 마음이 모인다. 노래가 뜻하는 메시지(주제)로 마음을 집중하게 된다. 하느님을 만나 대화하는 기도가 말씀을 듣고 화답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면,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한다.이렇게 큰 축제일에 마음을 더 모을 수 있고 이날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하는 '덧붙인 노래' 부속가는 우리에게 상당히 유익하다. [경향잡지 1998년 5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효성 가톨릭 대학교 교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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