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living bread that came down from heaven;
whoever eats this bread will live forever;
and the bread that I will give
is my Flesh for the life of the world.
(Jn.6.51)
제1독서 사도행전 8,26-40
복음 요한 6,44-51
어떤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하늘나라는 매우 아름답고 좋은 곳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던 신자 한 분이 미사가 끝난 뒤에 신부님을 찾아가 물었지요.
“신부님은 하늘나라에 실제로 가본 적도 없으시면서 어떻게 그곳이 좋은 곳인지 알 수 있나요?”
이에 신부님께서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네. 그건 아주 쉽게 알 수 있지요. 왜냐하면 하늘나라가 싫다고 되돌아온 사람은 아직까지 단 한 사람도 없었거든요.”
아주 간단한 답변이면서도 명쾌한 답변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지요. 이는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하늘나라가 궁금해서 물어보았고,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는 그래서 참된 행복이 충만한 나라로 설명해주셨지요.
그렇다면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나라에 과연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님께 오는 사람, 예수님께 대해 굳은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마지막 날 다시 살게 되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죽어 없어지는 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 대한 믿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님을 얼마나 믿고 있을까요? 그러나 많은 이들이 부족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즉, 믿음의 생활과 정반대의 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사람들은 나름대로 믿음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믿음의 표현을 입으로만 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단순히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해야지만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만 했다고 해서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없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떠올려 보세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두려워 떨며 다락방에 숨어 있었지요. 며칠 전 복음에서도 나왔듯이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을 보자 제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 바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들의 삶 안에서 간직하는 두려움, 걱정, 의심 등의 마음들이 바로 믿음 없음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생명의 빵 그 자체이신 주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안에서 부정적인 마음을 간직하며 힘들게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제는 두려움, 걱정, 의심 등을 모두 버리고 주님만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너무 좋아서 아무도 되돌아오지 않는 그 하늘나라에 우리 역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기적이다(베일리).
수염 깎는 방법(최인호, ‘꽃밭’ 중에서)
어느 날 아침 수염을 깎다 말고 갑자기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수염을 깎았는지 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 동안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본 적이 있다. 지금껏 나는 항상 수염이 난 방향의 반대쪽으로 깎아 왔었다. 그렇게 되면 억센 수염의 뿌리가 날카로운 면도날에 의해서 잔인하게 베어져 나가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남몰래 밀도살하는 정육업자가 짐승의 털을 깎는 것과 같은 스릴마저 느끼게 한다. 잔인하게 수염을 깎고 나면 턱 근처엔 항상 칼에 베인 상처가 남게 마련이다. 더구나 일회용 면도기들은 조잡하게 만들어져서 항상 입 근처에 상처를 남긴다. 한바탕의 밀도살이 끝난 뒤 스킨을 바르면 상처로 스며드는 미안수의 강렬한 자극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날 아침은 어제까지 내가 깎아 왔던 면도 방법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생전 처음 면도날을 수염이 난 방향을 따라서 결대로 밀어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수염은 마치 익숙한 주부들이 사과껍질을 벗기듯 부드럽게 깎여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어제까지의 수염 깎는 방법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으며 육십 평생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방법으로 수염을 깎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내 입가에는 면도날로 인한 상처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단 말인가. 수염을 깎는 매우 사소한 일상사마저도 나는 제대로 된 방법을 모른 채 그저 하루하루 떠밀리듯 살아왔음이 아닐 것인가.
Mystic Heart - As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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