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미사 전례의 발전 역사 (1) 초대교회의 미사(1-3세기) 사도시대 초기의 미사는 예수님의 최후만찬 예식을 원형 그대로 재현하고 반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성찬례(미사)는 루가(22,19-20)와 바울로의 기사(1고린 11,23-26)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먼저 빵에 대한 말씀과 행위가 있고, 이어 식사가 있은 다음 포도주잔에 대한 말씀과 행위가 뒤따랐다. 즉 성찬례는 식사와 성찬의 혼용 형태였다. 그러던 것이 마르코(14,22-25)의 70년대에 이르면 빵 예식과 잔 예식 사이에 식사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다. 이것은 이 시기에 이르러 성찬이 식사와 완전히 분리되어 성찬을 식후에 별도로 거행하였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2세기 초엽에는 신자 수가 늘어나고 식사에서 오는 여러 가지 폐단으로 말미암아 차츰 성찬례에서 식사 부분이 사라지게 되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유다인의 시나고가(Synagogo) 예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독서와 강론 등으로 구성된 말씀전례가 자리하게 되었다. 말씀전례는 이 시대 미사 예식의 첫 부분으로 고정되었다. 초기 교부 유스티노는 그의 저서 "호교론"에서 당시의 성찬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성찬례의 형태는 먼저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사도들의 회상록이나 예언자들의 책을 봉독한 다음 집전자는 봉독된 성서 말씀을 설명하며 보충하는 강론을 하였다. 이어서 하느님과의 나눔을 두텁게 하고, 신자들 간에 나눔을 위해서 함께 공동기도(보편지향기도)를 바치고 그러한 확인의 표시로 평화의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집전자에게 빵과 포도주를 갖다 주면 집전자는 그 예물 위에 감사기도를 바쳤고, 신자들은 '아멘'으로 응답하였다. 이 때에는 아직 전례서도, 일정한 기도문들도 없던 시대였기에 집전자는 자유롭게 자기 나름대로의 말로 감사기도를 바쳤다. 집전자의 감사기도가 끝나면 영성체가 이어졌는데, 주목할만한 것은 부제들을 통해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게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성찬례의 중심 부분인 '감사기도'는 이 시기에 고정된 경문이 아니었고 주례자가 자유로이 바치는 자율기도였다. 그러한 자율 감사기도 가운데 하나를 3세기 경에 교부 히뽈리또는 그의 저서 '사도전승'(Traditio Apostolica) 안에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이것은 히뽈리또가 감사기도 중에 꼭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는 요점을 전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사도전승에 나타난 감사기도문은 주례자의 권유("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 "마음을 드높이" ; "주님께 감사합시다")와 회중의 응답("또한 당신의 영과 함께" ; "우리는 주님께 마음을 향하고 있습니다" ;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권유의 인사말이 있은 다음 본격적인 축성기도가 이어진다. 이 축성기도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에 대해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감사의 기도, 성체성사 제정에 대한 주님의 말씀,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념, 성령을 청하는 기도, 장엄한 영광송의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감사기도는 오늘날 미사전례에서 사용하고 있는 '감사기도 제2양식'으로 발전되었다. [가톨릭신문, 2004년 2월 1일, 정의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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