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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25일 야곱의 우물- 요한10,27-30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4-25 조회수382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7“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을 알아뵈올 수 있도록, 듣는 마음을 제게 주소서.

독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착한 목자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기에 앞서, 구약성경에 나오는 목자의 표상을 잠깐 기억하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는 착한 목자이다.” (요한 10, 11)라는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분명 “이스라엘의 목자시여, 귀를 기울이소서.” (시편 80, 2) 또는 “주님은 나의 목자” (시편 23, 1) 같은 구절을 기억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뿐만 아니라 아시리아 · 바빌론 · 이집트 등 고대 근동에서 목자는, 임금을 나타내는 표상이었습니다.(에제키엘 34장을 보면 이러한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마치 양들을 목자에게 맡기듯 신들이 백성을 임금에게 맡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모세 · 여호수아 · 다윗 등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목자라는 표현이 적용된 예가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목자시라는 표현입니다. 그것은 곧, 다른 누가 아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임금이심을 뜻합니다. 목자가 양 떼를 인도하듯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하느님 (시편 77, 21), 바빌론에 유배 간 이스라엘을 어린양처럼 품에 안고 이끄신 하느님 (이사 40, 11), 오직 그분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임금이셨습니다.

이제 오늘 복음으로 돌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을 듣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이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해주셨던 바로 그 역할을, 이제 당신이 행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30절) 전대미문의 말씀입니다. 실상 그 자리에 있던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나는 착한 목자이다.” 라고 하시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주장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33절)라고 대응하는 것입니다. 실상 그들은 제대로 알아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당연히, 이것은 누구나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당신께서 이미 말씀하셨고, 또 당신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시는 일들이 그분이 ‘아버지와 하나이심’ 을 증언하지만, 듣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심’ 을 증언해 주는 일들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주었다.” (32절) 예, 주님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자이심을, 임금이심을, 메시아이심을, 하느님이심을 보여 주는 것은 그분께서 사람들을 위해 해주신 좋은 일들, 가난한 이들에게 보여주신 그분의 사랑, 병자와 고통 받는 이들에게 보여주신 그분의 자비, 죄인들에게 베풀어 주신 용서, 구원의 선포,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돌을 던지는 사람들도 그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런 ‘좋은 일들’ 의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뵙지 못합니다. 요한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표징’ 들이 하느님의 ‘영광’ 을 드러내는 것임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영광, 하느님의 왕권, 하느님 나라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통치에 대한 고정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특정 형태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뵙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찰
문제는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뵐 수 있는가 ?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좋은 일들,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과 다른 그분의 모습, 이것을 그분이 목자이시고 메시아이시고 주님이시라는 주장과 결부시킬 수 있는가 ?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마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며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를 내가 결정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 안에서 그것을 배우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 이것을 할 수 있다면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그분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다른 복음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듯이, 요한복음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합니다.) 먼저 이야기한 믿지 않는 이들과 달리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들,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곧 당신이 메시아이시고 (24 – 25절)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30절) 알아보는 사람은 지금 이미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며, 하느님과 친교를 이룹니다.

기도
세상 끝이 모두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고
민족들의 모든 가문이 그분 앞에 경배하리니
주님께 왕권이 있고 민족들의 지배자시기 때문이다.
(시편 22, 28 – 29)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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