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노동자 성 요셉" - 5.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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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0-05-01 | 조회수385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5.1 토요일 노동자 성 요셉 기념미사 창세1,26-2,3 마태13,54-58
"노동자 성 요셉"
입당 송 시편 말씀이 그대로 성 요셉을 지칭하는 듯 했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주님의 길을 걷는 사람! 너희는 네 손으로 벌어먹으리니,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시편128,1-2).
성모성월 참 좋은 시절 5월 첫날에 맞이하는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이 참 기분 좋습니다. 노동자 성 요셉을 주보성인으로 모신 저희 수도원이기에 그 기쁨 또한 각별합니다. 겸손하신 성모님은 당신의 거룩한 배필이신 성 요셉에게 당신의 달 첫 날을 내주셨습니다.
노동자 성 요셉, ‘노동자’라는 말이 참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노동자 성 요셉이자 노동자 하느님이요, 노동자 요셉 수도원의 수도승들입니다. 그대로 노동자 하느님을 꼭 닮은 노동자 성 요셉입니다. 예수님의 자부심 넘치는 요한복음 말씀 기억하실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아버지께서 여태껏 일하시니 나도 일합니다.’
아침 성무일도 초대송 후렴이 생각납니다. ‘목수의 아들이라 불리기를 원하신 주 그리스도께 어서와 조배드리세.’ 부전자전이란 말도 있듯이 노동자의 아들, 목수의 아들이라 불리어지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자랑스러워했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몸소 공생애 전 33년 동안 목수인 성 요셉을 양부로 모시고 목수의 아들, 노동자로 사셨습니다.
아침성무일도 중 노동자 하느님에 대한 다음 시편말씀들이 생각납니다. “하느님, 하시는 일로 날 기쁘게 하시니, 손수하신 일들이 내 즐거움이니이다. 하느님, 하신 일들이 얼마나 크옵시며, 생각하심 얼마나 깊으시니이까.”
“우러러 당신 손가락이 만드신 저 하늘하며, 굳건히 이룩하신 달과 별들을 보나이다.”
하느님 노동의 산물이 아름다운 자연에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입니다. 이 하느님의 작품인 아름다운 산하를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이 얼마나 무모한 죄악인지 분명히 들어납니다. 오늘 성무일도 찬미가 중 성 요셉에 대한 묘사도 참 아름다웠습니다. “독생성자 아드님을 귀히 모시고/검소하고 진중하게 인내하시며 손수노동 수고로이 행하시면서/귀한 아들 정성다해 기르시었네.” 가끔 정성을 다해 농사짓는 이들을 대하면서 과연 자식 농사에도 저처럼 정성을 다 기울일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노동자의 모범이신 요셉성인은/알찬교육 남기시고 이끄시었네. 당신몸소 흘린땀과 노동으로써/삶의터전 성스러이 만드시었네.” 노동자 성 요셉의 묘사에서 즉시 연상된 게 성 요셉처럼 땀 흘려 일하며 수도원 삶의 터전을 성스러이 가꾸는 우리 수사님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지혜는 바로 이런 성 요셉 양부를 보고 배운 결과였음이 분명합니다. “저 사람은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의 지혜와 기적의 힘은 책 공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사막의 수도승들처럼 삶 의 체험을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지혜와 기적의 힘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피상적 편견에 굳어진 고향 사람들 결코 이 비밀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것이 참 좋았다.” 바로 1독서 창세기의 이 말씀이 모든 판단의 잣대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당신 피조물이듯이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성 요셉입니다. 하느님의 진선미를 닮을수록 참 좋은 사람이요 피조물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 요셉처럼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삶이겠습니까?
첫째, 겸손한 삶입니다. 평생을 들어나지 않게 배경의 산처럼, 나무의 뿌리처럼 겸손한 삶을 사신 성 요셉입니다. 산 같은 배경의 성 요셉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성 가정이요, 깊은 뿌리와 같은 성 요셉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꽃과 열매 같은 성모님과 예수님이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봐도 ‘목수의 아들’이란 말마디뿐 성 요셉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습니다. 평생 하느님 안에 숨겨진 삶을 사셨던 겸손한 성 요셉입니다.
둘째, 있는 그대로의 참 나의 삶입니다. 하느님을 닮을수록 참되고 좋고 아름다운 있는 그대로의 참 나의 삶입니다. 성 요셉, 늘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았기에 오염 변질되어 속화되지 않고 끊임없이 정화되고 성화되어 있는 그대로의 참 나의 삶을 사셨던 관상가임이 분명합니다. 바로 우리 정주생활이 목표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과연 성 요셉 정주생활의 대가라 할 만합니다.
셋째. 관상과 활동, 기도와 노동이 조화된 삶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창조활동 후 이레째는 관상의 휴식을 취하십니다. 관상과 활동, 기도와 노동이 조화될 때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삶임을 깨닫습니다. 성 요셉의 삶이 그러했고 우리 수도승들이 목표하는 영적 삶의 리듬 또한 그러합니다. 좌우로 성 요셉과 성 베네딕도 수호성인을 모시고 사는 우리들은 행복합니다. 두 분 성인들만 보고 배워도 충분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성 요셉의 진가를 인정하셔서 그분을 성교회의 수호자, 노동자들의 수호자, 임종하는 이들의 수호자로 삼으셨습니다. 마치 하느님의 훈장을 주렁주렁 단 모습 같습니다.
우리 모두 성모성월 5월 첫 날, 노동자 성 요셉을 우리 수도원의 주보성인으로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합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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