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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58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02 조회수403 추천수6 반대(0) 신고
 

 

 ♣ 성경으로 공부하는 가톨릭 교리 ♣

 

II. 삼위일체

 

5.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

 

r. 참된 자신의 정체성 성립: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나’는 누구인가? 이는 자신의 자아를 인식할 때, 즉 인간이 진정으로 인간임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누구나 자신에게 끊임없는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의 해답은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향하는지를 깨닫지 못하면 풀릴 수 없는 영원한 미스테리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자아의 정체성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 당신 죽음과 부활로 보여주셨습니다.

 

보통 자신의 정체성은 ‘관계’ 안에서 성립되고, 이 정체성은 ‘초월적’ 본질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즉, 아기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주체로 생각하게 될 때는 엄마의 미소를 보았을 때입니다. 마치 남자가 여자가 없다면 자신의 성(性) 정체성을 깨달을 수 없듯이 엄마가 없으면 아기가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습니다. 반대로도 마찬가지인데 엄마는 아기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엄마임을 인식합니다. 엄마는 아기 덕에 젖이 나오게 되고 아기 덕에 엄마만이 누릴 수 있는 정체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신학적으로 성부께서 성자를 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갖게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부 없는 성자는 없고 성자 없는 성부는 없습니다. 또 성부와 성자를 생각하지 않고 성령이 누구신지 정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성부께서 성자께 주시는 당신의 모든 것이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를 동시에 생각하지 않으면 영원히 알 수 없는 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라는 것은 ‘너’를 앞에 두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나와 너의 관계성 안에서 새로운 ‘우리’라는 초월적인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따라서 ‘나’라는 것은 단지 ‘너’만이 아닌 더 큰 세계로의 지향을 지닌 존재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초월성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사랑의 초월성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이 그렇듯이 사랑의 본질은 열려있고 초월하는 것이고 항상 더 커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미지의 세계로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자신의 참된 정체성이 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따라서 태어나면서부터 어딘가를 지향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누구든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는 인간의 존엄함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더욱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시켜 갈 때에만 진정 자신의 올바른 존엄성을 실현시키는 일입니다. 만약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으로의 여정을 출발할 원동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자녀가 자신의 자녀임을 인식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참다운’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변화되어야 하듯, 개인 모두가 ‘참다운 나’의 모습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세상 모든 사람은 자신의 올바른 정체성을 찾아 확립해야 하는 ‘mission’이 주어진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해답을 계시하신 분은 당연히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정체성은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요르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 장엄하게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선포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받으실 세례가 따로 있다고 하셨듯이 세례란 바로 자신을 죽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신적 본질이 같으신 분이셨지만 굳이 신적 본질을 유지하려 하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인간이 되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여기에 ‘자기 초월’의 핵심이 들어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순종하여 죽으심으로써 참다운 아들의 정체성을 회복한 것입니다. 그 답으로 아버지는 당신의 모든 것인, 하느님의 본질인 성령님을 아들에게 주십니다. 자신을 죽이고 스스로 죽임을 당한 ‘사람의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주시는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의미인 것입니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몸에 상처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자기비움’의 상징입니다. 만약 아들이 자신을 버리지 않아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기를 거부했다면 아버지와 ‘동등본질’의 하느님이 될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도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회복하도록 우리 ‘자아’를 포기할 것을 권고하십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너희 자신을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매일 자신이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실 수 없으십니다. 마치 아드님이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시지 않았으면 아버지와 한 몸이 되실 수 없으셨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비우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삼위일체의 신비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정체성의 모범입니다. 왜냐하면 그 방법을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스스로 ‘나’가 되려고 하면 참된 ‘나’의 정체성을 잃게 되지만, ‘나’를 버리면 당신 자신을 ‘나’ 라고 하신 하느님의 자아가 우리 안에 들어와 ‘참된 나’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성광에 성체가 넣어져 있지 않다면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될 때 비로소 그를 통하여 그의 ‘나’라는 정체성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성을 회복하는 것처럼, 우리 정체성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참여하여 참된 ‘자신’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자기 정체성의 회복이고 우리가 지향해야할 참된 자신의 모습이며 참된 자기 존엄성의 회복인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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