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쳐 내신다.’ 열매는 기쁨의 신앙생활입니다. 오랫동안 믿어 왔는데도 여전히 즐거운 신앙이 아니라면 원인을 찾아봐야 합니다. 성당 다니는 이유가 아직도 막연한 의무감이라면 이제는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뿌리가 생명입니다. 잎이 아무리 무성해도 뿌리가 약하면 금방 시들어 버립니다. 물과 양분을 잎과 줄기로 올려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뿌리의 역할이 없으면 시들해지고 맙니다. 기쁨이 생겨날 리 없습니다.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신앙의 뿌리 또한 ‘아무도 모르는’ 적선이며, 기도이고, 선행입니다. 이러한 실천이 없었기에 허전했던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최고의 자선을 무외시(無畏施)라 했습니다. 두려움을 없애는 행위를 가장 높게 평가했습니다. 요즘 표현으로는 ‘스트레스’를 없애 주는 것일 겁니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를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좋아지면, 주님과 맺는 관계도 좋아집니다.
주님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그분의 도우심 안에 머무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까지도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겁주는’ 신앙은 참신앙이 아닙니다. 두려움을 내세우는 지도자는 ‘바른 지도자’가 아닙니다. 남의 두려움을 없애 주면, 자신의 두려움도 언젠가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