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 준비하고 기다리는 순결함 노자의 도덕경인가 싶다. “향 싼 종이에서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서 비린내 난다.”고 했다. 속에 품은 마음에 따라 밖으로 드러나는 향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은 행동과 표현을 보면 속에 든 마음가짐을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과는 원인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사람들은 한 가지 사물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을 품고 있는지, 무엇에서 유래했는지 알려고 한다. 또 나타난 현상이 그러하므로 원래의 것, 원인이 되는 것, 시초가 되었던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혀서 지금의 것을 이해하려고 한다. 우리는 세상에 드러난 현상들을 보고 만물을 만드신 하느님을 알게 된다. 그 원인을 찾고 시작을 알려는 관심과 노력으로 하느님을 깨닫게 된다. 사도 바오로도 그렇게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세상이 창조된 이래 그 지으신 것들을 통하여 이성의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로마 1,20). 교회에서 지내는 많은 축일들 가운데에는 그렇게 한 가지 사실에 견주어 그것과 연관성을 찾아 제정된 축일들이 있다.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은 ‘예수 성탄 대축일’(12월 25일)의 대척점에 위치한다. 예수님을 떠오르는 해에 견주어 세례자 요한은 지는 해를 의미하는 축일이다. 또 ‘예수 성탄’에 비추어 만 아홉 달 전 날에 예수님의 잉태를 알리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을 지낸다. 그렇다면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은 교회에서 어떻게 생겨났으며 지내게 되었을까? 초대교회 때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로마 교회에는 네 가지 커다란 성모님 축일이 있었다. 성모 영보(주님 탄생 예고), 성모 취결례(주님 봉헌), 성모 승천, 성모 탄생 축일이었다. 앞의 두 가지는 본래대로 주님 축일로 환원되었고, 성모 승천과 성모 탄생을 성모님 축일로 오랫동안 지내왔다. 성모 탄생 축일은 초대 교회에서부터 세례자 요한의 탄생 축일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앞길을 미리 준비하였듯이, 성모님도 예수님의 인성을 준비하기 위한 하느님의 선택받은 도구였다. 따라서 성모 탄생 축일은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를 위한 축일이며 인류에게 기쁨이 되는 축일이다. 이 축일은 성모님의 탄신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였던 전통과 구세주를 준비하기 위한 도구이신 성모님의 역할을 강조한다. 예수님께서 원죄 없이 탄생하신 분이시므로 성모님도 원죄 없이 탄생하셨다는 교리가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 교리는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성모님도 탄신뿐 아니라 잉태되실 때에도 원죄가 없으셨다는 신앙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9월 8일)에 비추어 아홉 달 전 날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을 교회가 기념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모님의 탄신 축일에서 잉태 축일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성모 탄신 축일의 전례는 구세사 안에서, 특히 그리스도와 관련지어 성모님의 역할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성모님의 탄신으로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었고(본기도), 성모님은 한결같이 순결한 모성을 지니신 분이시다(예물기도). 그래서 성모님은 우리 구원에 희망의 빛이 되신다(영성체 후 기도). 말씀 전례는 미가 예언자를 통해 작은 도시 베들레헴에서 하느님의 구원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들려주며(제1독서), 예수님의 족보와 예수님의 탄생 사화(마태오 복음)에서 성모님의 구세사적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이시라는 것을 요셉에게 알려준다. 이날의 전례는 예수님의 인류 구원과 연결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의 탄신은 단순한 인간의 탄생이 아니라,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보증하는 기쁨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며, 교회는 이것을 기뻐하고 그 탄생에서 인류 구원의 희망을 얻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탄신은 세례자 요한처럼 구세주 오심의 기다림을 준비하고 표현한다.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준비가 미리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 세례자 요한, 그리고 성모 마리아를 통해 구원을 준비하셨다. 성모님의 탄신을 기뻐하며 장차 구세주를 모실 그 순결로 주님을 준비하고 기다리신 성모님을 기억해 보자. 성모님의 역할은 구세주를 우리가 맞아들이도록 마련하시는 것이었음을 기억하자. [경향잡지, 2003년 9월호, 나기정 다니엘 신부(대구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