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전례와 사회생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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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0-29 | 조회수3,210 | 추천수0 | |
파일첨부 전례와_사회생활.hwp [553] | ||||
전례와 사회생활
I. 들어가는 말
많은 이들이 오늘날 신앙생활과 사회적 삶을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신앙생활은 초월적인 영역에 속한 것이고, 사회적 삶은 현실적인 영역에 관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聖)과 속(俗)으로 구분하는 이러한 의식은 신앙생활과 사회적 삶이 아무 연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시각은 근대 이후에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세속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영향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들은 사회가 분업화하고 발전되어 과거 종교적 영역에 속했던 것들이 여러 가지 사회제도들로 대체됨으로써 종교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신앙생활과 사회적 삶을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이른바 ‘세속화 현상’은 종교를 이제 개인적인 선택으로 유지되는 개인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 결과 신앙생활과 사회적 삶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신앙생활과 사회적 삶의 단절은 바로 여기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인들에게 신앙생활의 영역은 사회적 삶의 영역과는 구분되며 개인이 추구하는 마음의 평화나 정신적 안정을 주는 정서적 차원에 머무르게 된다.
신앙생활과 사회적 삶을 분리시키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으로 개인주의적 기복신앙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은 종교의 본질이나 핵심을 받아들이고 생활화하기보다는 개인의 기복과 관계되는 것만을 선별하여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앙이 개인적 구원이나 이익에 치중하게 되어 건전한 사회를 향한 종교의 역할, 다시 말해 사회의 영성을 지나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관은 전례가 뜻하는 본질적인 의미도 기복적인 것으로 변질시킨다. 신앙인들이 참된 신앙보다는 자신의 가정과 사업에 마음을 쓰고, 신앙을 그러한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상 앞에서 종교의 사회적 차원을 되짚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신앙 따로, 생활 따로’로 표현되는 오늘날의 신앙관을 바로잡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종교가 가지는 사회적 역할 등에 관한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이 글에서는 교회의 전례가 표현하는 사회적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의 연관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 같은 논의는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좀더 자세하게 다루어질 예정이므로 여기서는 전례 일반의 전체적인 사회적 의미만을 다룰 것이다.
II. 전례의 사회적 차원
교회의 전례는 교회의 정통 교리를 함축적이고 가시적인 형태로 표현해 주는 신앙행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앙인들은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신앙을 갈무리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자주 전례가 본질적으로 다양한 특성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 곧 우리가 전례의 어떤 한 특성을 전체인 양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전례를 경신례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이다. 전례의 경신례적 특성은 전례의 일차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이다. 전례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구원의 신비에 대한 우리의 감사와 찬미를 표현하고 있고, 우리가 전례를 통하여 이 같은 하느님 사랑의 신비에 참여한다는 면에서 경신례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례를 개인적 성화의 차원에서 이해한다. 신앙인이 거룩한 생활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과 연관시켜 전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례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해서도 강조해야 한다. 그것은 전례가 신앙인들의 사회적 삶을 규정한다는 측면이다. 그 동안 전례의 경신례적인 면이나 개인적 성화의 측면을 자주 강조함으로써 전례는 신앙인들의 사회생활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지나치게 초월적이었다. 그러나 전례는 그 본질상 사회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비단 하느님 공경의 차원만이 아니라, 세상 안에 신앙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삶의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사회적이라 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예수님 말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마태 5,23-24). 이 말씀은 하느님께 예물을 드리는 경신례가 사회적 관계로 표현되는 이웃과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례가 하느님께 바치는 경신례냐, 개인의 성화를 위한 것이냐, 삶을 위한 것이냐 하고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전례는 경신례인 동시에 개인의 성화를 위한 것이고, 또 사회적 관계를 비롯한 모든 삶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례의 초월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신앙은 현실생활과 동떨어지기 쉽다. 또 전례를 개인적 성화의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것도 비역사적이거나 비공동체적 신앙으로 흐르기 쉽다. 이렇게 볼 때, 전례의 사회적 차원은 신앙인에게 올바른 신앙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준다고 하겠다.
신앙인들은 전례를 통하여 일체감과 정체성을 유지하며, 세상 안에서 담당해야 할 복음적 사명을 자각하게 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례는 신자들이 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 교회의 본질을 다른 이에게 드러내 보이고 명시함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전례헌장 2항)고 가르치고 있다. 곧 전례가 신앙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평신도 교령]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평신도는 사도직 수행의 권리와 의무를 그리스도와의 일치에서 받는다. 평신도는 세례성사로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가 되고, 견진성사로 성령의 힘을 받아 강해졌으며, 주님으로부터 사도직 수행의 사명을 받았다”(3항). 그런데 이 사도직 수행의 사명은 본질적으로 사회활동에 속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인은 사회 속에서 생활하는 생활인이고, 그는 그의 세속적 삶에 필요한 모든 활동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앙인들이 복음선포와 인간 성화에 힘쓰며 동시에 현세 질서에 복음정신을 불어넣어 현세 질서를 완성하기 위해 수행하는 모든 활동은 구원활동으로서 그 자체가 바로 사회활동인 것이다. 신앙인들은 전례를 통해 이 같은 사명을 거듭 깨닫게 되고, 전례 안에서 이 사도직 수행에 필요한 원천적인 힘을 얻게 된다.
III. 사회생활의 원천으로서 전례
전례는 한 개인을 절대자이신 하느님과 연결해 줄 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도 연결해 준다. 신앙인들은 전례행위로 하느님의 구원 은혜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면서 동시에 공동체 삶의 규칙들을 배우게 되고,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참 신앙인으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일상적 윤리와 가르침들을 익히게 된다. 그래서 전례는 사회생활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 규범과 가치 등을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곧 질서를 배우고 공동체 윤리와 가치를 배우며 사회인으로 성장해 가는 개인은 자신을 뛰어넘어 사회 구성원의 공통 의식을 담고 있는 모든 사회적 가치와 규범들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고려하는 사회적 가치와 규범들은 궁극적으로 우정과 사랑이라는 토대 위에서 형성된 것이고, 개인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이를 배운다. 그런데 전례는 이 같은 사랑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장이며, 좀더 분명하게 신앙인들의 사회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방향 지운다. 전례는 개인의 이기심이나 욕심을 정화하도록 이끌어주고, 독단적인 삶의 원칙들에 대하여 반성하게 만들어 공동체 삶의 가치와 규범을 정립하도록 개인을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전례는 물질 우선적인 사고방식에 대해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여 인간성과 도덕성을 회복시킨다. 그리고 교회는 거룩한 전례 안에서 표현되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모델로 하여, 구체적인 형태로 사랑의 교환으로서 인간관계, 공동선에 대한 의식, 정의, 나눔 등에 관한 사회적 윤리를 신앙인들이 체험하도록 한다. 따라서 전례를 매개로 하여 신앙인은 신앙인의 정체성과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도덕성을 배우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례는 사회적 삶의 원리를 제공하고, 사회적 삶은 전례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전례를 중심으로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은 순환적 구조 위에 놓이게 되는데, 이는 단순한 반복적인 순환이 아니라 질적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가는 순환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례 안에서 체험한 삶의 원리를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고, 실제 생활의 경험이 다시 전례 안에서 재해석되어 가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순환으로 전례는 사회생활 속에서 전례의 정신이나 의미, 교회 가르침을 재생산하게 되고, 또 반대로 사회생활은 전례 안에서 재생산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전례는 단순한 의례적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는 일상생활을 위한 원칙들이 있고, 현실의 토대 위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이 제시되어 있다. 또 현실 생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세속적인 생활이 아니다. 그것은 전례를 통해 체험하고 익힌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펼치는 장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전례를 준비하는 신앙의 터전인 것이다. 이처럼 전례를 통한 신앙과 현실 생활의 연결은 신앙인들이 관념적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현실 생활을 속된 것으로 여기는 이원론적 신앙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러므로 전례가 더욱더 전례적이려면 현실 생활에서 준비되어야 한다. 생활은 교회의 가르침과 상관없이 해나가면서, 전례에 빠짐없이 참여한다고 해서 올바른 신앙생활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례에서 표현되는 의미들을 삶속에서 생활화하고자 노력할 때, 또 생활에 토대를 둔 전례일 때 전례의 의미는 더 풍성해지고 살아있는 전례가 될 것이다.
IV. 전례와 관련된 사회생활
오늘날과 같이 세속적인 가치와 이념으로 사회가 급진적으로 변동하는 시대에 신앙인들은 가치의 혼란을 일으킨다. 신앙인으로서 따라야 할 덕목이나 윤리보다도 세속적인 생활방식을 먼저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현실 앞에서 교회의 전례는 신앙인에게 사회적 삶에 필요한 바른 가치관과 윤리를 제시하고 있고, 복음적 가치로서 현실의 삶을 조명해 준다. 신앙인들은 전례가 표현하는 의미들을 깊이 인식하여 자신의 생활 속에 뿌리내리고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전례의 의미가 생활화되지 않을 때, 전례는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례는 어떤 사회생활을 제시하는가? 여기서는 전례에서 직접 간접으로 표현하는 사회적 의미들에 대해 개괄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공동체 삶
교회의 전례는 우선적으로 공동체성을 띠고 있다. 전례 안에서 모든 사람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참여하는데, 어떤 차별이나 신분의 구별 없이 모두 한 형제자매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전례의 공동체적 성격은 지역, 나라, 민족, 종교, 이념, 남녀노소, 빈부귀천 등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벽을 뛰어넘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까지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이기주의, 국수주의, 분쟁, 미움과 폭력 등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일치와 평화의 중요성을 이해하도록 해준다. 왜냐하면 전례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인이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공동체적으로 합체된 지체들임을 잘 이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체들끼리의 더욱 확고한 유대와 상호 존중, 우의와 협력을 조성하고 촉진시켜 나가도록 독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전례 안에서 공동체적 가치와 질서를 받아들이고 생활하는 것을 배우고 공동선을 지향하며 연대 정신을 전례 안에서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동 운명체로서 더욱 튼튼한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반드시 모든 대립과 갈등을 버려야 하고, 서로 다투어 남을 존경하며(로마 12,10 참조), 우의를 다지고 멀리 내다보는 통찰력과 인내를 가지며 협력 의지를 지니며 때때로 요구되는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평신도교령」 31항 참조). 교회의 전례는 이렇듯 공동체 삶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은 극단적이고 냉혹한 이기주의와 반사회적 개인주의 문화가 모든 영역에서 사회적 관계를 해이하게 하고 파괴하도록 위협하는 시대이다. 또한 다원적 시대이며, 사회의 분업화와 전문화가 활발히 이루어진 시대이다. 이런 사회 상황에서 전례가 표현하는 공동체성은 주변 환경과 사회 변혁의 원천과 자극이 된다. 그것은 신앙인들이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개인의 이기주의를 뛰어넘어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도록 고무되고, 신앙인들이 자신의 사명으로써 공동체 생활을 실천해 가도록 파견되기 때문이다. 또한 신앙인들은 전례 안에서 체험한 공동체 삶을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하여야 할 의무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의 전례는 개인의 기복이나 신심을 위한 전례가 아니라, 언제나 세상 안에서 함께 사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전례이고, 세상 모든 사람과 함께하는 전례이다. 많은 신앙인들이 이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전례를 개인적인 신심행위로 생각하는 것은 전례의 이런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의 어떤 봉사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미사 참여만으로 신앙인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신앙이 그것이다. 이는 신앙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신앙이다. 또 주일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성당에 오면서 멀지 않은 거리를 꼭 차를 타고 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도 전례정신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공동체적 이익에는 상관없이 오로지 개인적인 이해만을 생활의 기준으로 삼는 것 모두가 전례정신에서 벗어난 사회생활인데 예를 들면, 신앙인으로서 어려운 경제 현실에도 아랑곳없이 과소비를 일삼는 행위,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사재기하는 행위, 모든 국민이 동참하는 시민운동도 외면하고 혼자만 잘살겠다는 생각 등이다. 이 밖에 환경을 더럽히고 훼손하는 행위, 외국인 노동자를 부당하게 대하는 행위, 다른 사람을 억누르고 배척하는 행위, 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행위도 전례의 공동체적 성격에 반하는 것이라 하겠다.
2. 사랑과 나눔의 삶
신앙인들에게 교회의 전례는 사랑을 체험하는 장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사랑이 전례 안에서 가시 형태로 표현되고, 신앙인들은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진실되고 진정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다. 이 사랑의 체험은 신앙인들을 찬미하며 감사하는 생활로 이끌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생활로 이끌어준다. 전례헌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전례는 신자들이 파스카 신비로 보양되어 사랑 안에 한마음이 되도록 격려하고, 신덕으로 받은 것을 생활로써 지키도록 기도한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계약이 미사 성제 중에 갱신됨으로써,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충동적인 사랑으로 이끌고 불타오르게 한다”(전례헌장 10항). 이처럼 전례는 신앙인들에게 사랑의 삶을 제시한다. 이것은 하나의 소명이며, 신앙인들이 자신의 삶으로 완성시켜 나가야 할 의무이다. 모든 사람들의 선익을 위하여 특별히 가난한 삶들과 소외된 이들과 상처받고 고통받은 이들을 위하여 헌신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또한 사랑의 삶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계명이다(요한 13,34 참조).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자신의 생활로써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말씀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사랑의 삶은 나눔의 삶과 연결된다. 나누지 않으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랑은 인간의 모든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고, 나눔으로써 표현된다. 나눔은 여러 형태이다. 시간, 물질, 마음, 정성 등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물질적 나눔은 특별히 중요한 사랑의 표현이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인색하거나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 잡혀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사랑이 될 수 없다. 물질적 나눔은 인간을 이기심과 욕심에서 해방시키는 행위이며, 창조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재화의 근본 목적에 부합하는 행위이다. 신앙인들은 전례 안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인간 구원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물질의 가치보다 우선하는 가치 곧 인간 우위의 가치를 사회생활의 근본 원리로 배운다.
사랑은 또한 정의와 관련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를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이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풍부히 나누어져야 한다”(사목헌장 69항). 세계주교대의원회의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정의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사랑은 이웃의 존엄성과 권리를 인정하라는 정의의 절대적 요청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사랑 안에서만 그 내적 충실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요, 그리스도의 형제이므로 그리스도인은 각 사람 안에서 하느님 자신과 정의와 사랑의 절대적 요청을 발견한다”([세계 정의에 관하여] 37항). 전례 안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삶은 이처럼 신앙인들이 사회생활 속에서 어떤 가치를 견지하여야 하는지를 일깨우고 있다. 곧 우리의 소비와 물질적 재화를 대하는 방식에 분명한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전례의 가르침들이 실천되려면 신앙인들 스스로 사치와 낭비를 버리고 검소하게 생활하고, 가진 바를 나누며, 모든 사람들의 선익을 위하여 생활하여야 한다. 사도행전에서 보여주는 초대교회의 모습은 전례와 관련된 사회생활, 특히 사랑과 나눔의 삶을 제시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사도 2,44-46).
3. 봉사의 삶
전례는 인간에게 펼치시는 하느님의 봉사를 표현한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전례 안에서 인간을 위해 봉사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고 섬기러 오신 주님의 인간에 대한 봉사가 그대로 전례 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성찬례를 살펴보면 이것을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성찬 전례의 핵심 요소는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라는 말씀과 “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희생 봉사를 의미한다. 예수님 몸소 인간 구원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시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한없는 섬김을 의미하며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을 양식으로 내어주시는 철저한 낮춤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러한 희생과 봉사는 십자가 죽음으로 완전히 실현되고, 신앙인들은 성찬례를 통해 섬기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주님의 봉사는 믿는이들에게 구원의 은총과 해방을 체험하게 한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이러한 선물이 거저 베풀어짐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인들은 이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게 하고 새로운 하느님 백성으로 만들어준 새 계약을 기념하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신분과 사명을 거듭 확인하고 다짐하게 된다. 전례 안에서 말할 수 없이 큰 선물을 체험한 신앙인들은 이제 세상을 향하여 파견된다. 이 파견의 의미는 주님의 봉사를 체험한 신앙인들이 이 고귀한 체험을 전례적 행위로만 국한시키지 말고, 일상생활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모범을 따라 세상 안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에 봉사하셨듯이, 신앙인들은 모두 세상과 사회, 인간에게 봉사하는 삶을 의무로 부여받는 것이다. 신앙인들의 봉사적 삶은 현세 질서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불어넣는 모든 활동을 통하여 구체화된다. 곧 정치, 경제, 사회, 입법, 행정,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이웃을 돕고 배려하는 자원봉사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각자의 신분, 환경, 능력, 소명에 따라 모든 사람과 사회의 선익을 위해 전개된다. 예수님께서 만찬 때에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4-15)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자신의 봉사로써 주님을 드러내고 증언하여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의 봉사적 삶은 경쟁적인 사회 구조와 문화에 새로운 삶의 원리를 제시하는 대안적 삶의 원형이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위해 빼앗고 억누르는 사회에,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고 갈등하는 사회에, 경쟁과 차별을 정당화하며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사회 환경에 신앙인들의 삶은 삶의 도덕적 원칙을 드러내며 새로운 사회를 위한 소중한 가치를 제공해 준다. 이러한 가치가 사회 안에서 확고하게 자리잡도록 신앙인들은 자신의 삶을 전례적 가르침으로 조명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삶 자체를 전례화하는 노력이다. 자신을 희생하고 이웃에게 봉사함으로써 스스로 세상과 이웃을 위한 제물이 되며, 세상에 생명력있는 빛을 던져주는 성사적 의미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이 세상 안에서 펼치는 다양한 봉사의 삶은 교회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 ‘세상의 복음화와 인간화’에 이바지할 것이다.
V. 나오는 말
이상에서 교회의 전례와 그 사회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오늘날 교회는 두 가지 큰 저항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신앙을 개인적인 신심으로 만드는 것과 신앙에 대한 무관심이다. 곧 한편에서는 이기적 개인주의 문화가 물결을 이루는 오늘의 문화의 영향을 받아 신앙마저도 개인적인 신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개인의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신앙을 기복적이거나, 지나치게 내세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신앙생활과 일상의 삶이 완전히 분리되어 삶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는 신앙을 보이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교회의 전례를 의무로만 여기고 부담스러워하며 마지못해 참여하는 무관심한 신앙이 있다. 전례가 제시하는 삶의 원리와 가치들을 생활화하지 못한 채 형식적인 신앙에 머무르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신앙적 환경을 극복하여 전례가 삶의 원천이 되게 하고, 일상생활이 전례의 토대가 되게 하는 살아있는 신앙이 되도록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신앙을 초월적이고 내세적인 것으로만 이끌기보다는 신앙인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교회의 전례는 이러한 신앙에 손쉽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자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땅에서 신앙인으로 사는 의미를 깨닫게 해야 하는 것이다. 또 신앙인들도 신앙을 초자연적인 은총만을 위해 믿는 기복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올바른 인격과 도덕성, 사회성을 닦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전례 참여는 신앙인들의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정신을 펴낼 첫째요 또한 불가결한 샘”(전례헌장 14항)이기 때문이다.
[사목, 1998년 3월호, 추교윤(서울대교구 청파동천주교회 주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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