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dvocate, the Holy Spiri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will teach you everything
and remind you of all that I told you.
(Jn.14.26)
제1독서 사도행전 15,1-2.22-29
제2독서 요한묵시록 21,10-14.22-23
복음 요한 14,23-29
어느 스승이 제자들을 모아놓고는 마당에 커다란 원을 그려놓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어디를 다녀올 테니, 너희는 그 동안 이 원 안에도 있지 말고 또 원 밖에도 있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뒤에 밖으로 나가셨어요.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원 안에도, 원 밖에도 있지 말라는 것은 원을 구분 짓는 금위에 모두 서 있으라는 것일까 싶었지만, 그것은 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발은 원 안에 또 한 발은 원 밖에 집어넣고 있었지만, 이것 역시 답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제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었지요.
잠시 뒤, 스승님이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할지를 모르는 제자들을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신 뒤, 빗자루로 원을 싹 지우는 것입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원 안에 있는 것도 또 원 밖에 있는 것도 아니기 위해서는 원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주위에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니 내 자신이 그 주인공일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 힘듦의 원인이 과연 무엇일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그려 놓은 아니면 스스로 그려 놓은 기준이라는 원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었을까요? 즉, 세속적, 물질적 기준에 의해 우리는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준의 원만 지워버리면 쉽게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지만, 우리들은 차마 이것들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원’이라는 이 기준들은 사랑의 문제에서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고유한 판단 기준인 원을 만들어 사랑을 저울질 하지요.
“네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저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 나한테 아무것도 주지 않는데 사랑하라고? 미쳤냐?”
이 세상의 관점으로 손익을 따지는 모습들, 그것이 바로 내 안에 있는 하나의 원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입으로는 많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그 원을 지우는 방법, 그리고 사랑의 기준을 제시해 줍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기준으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힘들어하지요.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신 주님께서는 성령을 약속해주십니다. 이 성령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도록 해줍니다. 이로써 주님 안에서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즉, 내 안의 원을 지우는데 성령께서 큰 도움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성령을 받아 자기 마음 안에 있는 부정적인 원을 말끔하게 지우고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선택도 분명해 집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내 안에 잘못 그려진 원을 지우는 것입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원, 이기심과 탐욕의 원, 미움과 다툼의 원, 분열과 의혹의 원, 거짓과 불신의 원 등을 말끔하게 지워야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주님을 나의 기준으로 내세워 진정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도스토예프스키).
마음의 주인이 되라(법정, ‘무소유’ 중에서)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드는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 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 들이다가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 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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