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통공(通功)이란 무엇입니까?
대속(代贖)이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속죄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아들이 돈을 꾸었는데 갚을 능력이 없을 때 부모님이 대신 갚아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죗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이것을 인간들 사이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죽은 이들을 위해서 이것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와 희생이 되는 것입니다. 공로의 지향을 그들에게 놓고 기도와 선행을 하면 그 공로가 연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가서 그 기간이 짧아지고 고통도 감소합니다.
이는 모든 이는 하느님 안에서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상에서 출발하고 그들은 또한 하늘에서 인간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연옥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곧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연옥 영혼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줄여주고 그에 고마움을 느끼는 그들은 산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자신 또한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도 도움이 됩니다.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이웃 사랑이듯이 고통 받는 연옥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하나의 이웃 사랑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 형제가 됩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부터 그렇게 살아간다면야 얼마나 좋겠습니까? 적어도 기도 안에서만이라도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지금 받는 고통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헌한다면 그 희생이 가치 있게 쓰여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두 도둑처럼 같은 고통이라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생깁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아버지와의 일치를 넘어서 교회가 탄생하게 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입니다.
H. 마지막 날에는 어떻게 됩니까?
마지막 날에는 연옥이 없어집니다. 천국과 지옥만이 남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과 그 사랑을 따라 산 사람들은 사랑의 나라로 가고, 미움인 마귀를 따라 산 사람들은 미움의 나라로 가서 그들과 함께 살게 됩니다. 행복과 고통.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25장은 그 판결의 기준이 바로 이웃 사랑임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미움과 시기와 불만족과 교만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또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성당에 나오게 되었다면 그 후에는 다른 이들도 데려와야 하는 의무가 지워지는 것입니다. 선교보다 더 큰 이웃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은 아마도 세상이 멸망하고 난 오랜 뒤에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연옥의 고통을 겪는 모든 시간이 채워져야 모든 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있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든지 하는 사심판에서 받은 판결이 번복되는 일은 없습니다.
최후의 심판의 완성은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혼인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석하거나 참석하지 않거나 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참석하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심판인 것입니다. 또 다른 복음에서는 초대받은 이들은 잔치에 오지 않고 다른 사람들로 잔치가 가득 찼습니다. 물론 혼인 잔치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겨났습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마지막 날의 모습입니다. 즉 육체까지도 승천하여 그리스도와 온전히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그래서, 성령과 교회가 “오소서!”하며 그리스도를 부르는 것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이는 마지막 날이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가 성령 안에서 온전히 혼인하여 한 몸을 이루는 사랑의 나라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