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께 올리는 글/ 어느 수녀님 글 -
성모님!
조심스럽게 지는 해를 보내고 함초로이 내려앉는
밤 이슭의 밀밭사이로 길게 누웠던 바람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초연히 빈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날을 기다리는 밀밭너머로
어둠이 친구하는 밤이면 언제나 당신을 생각합니다.
물가에 핀 창포인 듯
인간 밭에 핀 청초한 당신
가장자리를 택하신 당신께
탐욕스런 기도로 가운데 자리를 탐낸 영혼
나를 비비고 서는 후줄근한 후회가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죄인인 예수님을 조용히 응시하신
당신의 침묵은 살아있는 메아리로 작은 우리 가슴에 북으로 울립니다.
낭창거리는 촛불
마음에 엉겨붙은 죄상들을 빗줄기 되게 하고
숯불로 타는 한줌의 고백은 당신 향해 한마디 못다한 말로 남았습니다.
성모님!
우리가 겨눠온 과녁이 예쁜 지향이 아니라도 가슴에 묻어온 한 마디
'당신을 사랑합니다'
가장 침묵을 잘하신 여인이여!
오늘 밤 당신을 더욱 가까이 하고 싶어 둥글게 모인
우리 가운데 어머니로 다가 오십시오.
남에게 준 상처도 많지만
받은 상처도 많은 우리 가슴에
당신의 미소로
용서하는 우리 되게 하여 주십시오.
왠지 가끔은 함께 하는 공동체에 무게를 느끼는 죄스러움도
있었음을 이 밤 당신께 고백합니다.
성모님!
말없이 모아 쥔 촛불로 죄스런 마음 사르고
시작의 의미를 배우는 시간으로 남게 해 주십시오.
햇불 이마에 이슬이 내리는 촉촉한 밤이옵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이 여인이여!
둥근 모습 모난 모습 위에 얹혀
서로서로 덤으로 가는 우리옵니다.
성모님!
촛불로 밝힌 이 길로 오소서
조촐한 기도로 등불 만들어 밝힌 이 길로 오소서
깃털이 뽑힌 영혼의 뉘우침이
차례로 무릎 굽히는 이 밤
우리의 마니피캇을 당신께 봉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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