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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부활] 부활성야 미사, 빛의 예식: 새 생명의 창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9 조회수3,759 추천수0

부활 성야 미사, 빛의 예식 - 새 생명의 창조

 

 

봄이다! 완연한 봄기운이 우리의 볼을 스친다. 매서운 겨울 찬바람은 어느덧 사라지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땅에서는 파릇한 새싹들이 돋아나온다. 날씨의 변화는 우리가 입는 옷마저 바꾸어버린다. 봄이란 계절은 이렇게 온 세상을 다른 모습으로 바꾼다. 겨우내 움츠리고 숨어있던 생명이 솟아나고, 다시금 자신의 생명을 되찾는 계절이 봄이다.

 

생명의 계절을 시작하는 이때에 우리는 주님의 ’사순시기’를 지내고 ’주님의 부활’을 맞이한다. 사순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는 ’부활’이라는 새 생명을 준비하고 예약해 두고 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을 맞게 되면 그 크신 새 생명의 빛이 얼마나 강하고 힘있는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교회에서 부활을 맞는 첫 예식은 ’부활 성야 예절’로 시작한다. 예수 부활 대축일 전날 저녁에 교회는 일년 중 가장 성대한 부활 성야 예절을 거행한다. 이 예절은 밤에 이루어지므로 밤의 특성과 신비가 가장 잘 드러난다. 성야 예절은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밤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① 빛의 예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신 구원의 역사 이야기를 듣는 ② 말씀 전례, 그리고 부활의 특징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③ 세례 예식, 마지막으로 예절의 절정인 ④ 성찬례 등이다.

 

빛의 예식은 부활의 생명으로 이끄는 과정을 가장 잘 깨닫게 해주는 예식이다. 빛은 그리스도 부활의 가장 큰 상징이요 표징이다. 빛은 어둠을 없앤다. 빛이 비추이면 어둠은 저절로 없어진다. 그것이 빛의 힘이며,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힘이다. 죽음과 파멸은 어둠에 비유된다. 반면에 빛은 생명의 비유이다. 빛을 보고 빛을 받아들이며, 빛의 능력은 곧 생명의 능력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예수 부활 대축일 전날 밤이 되어 시작하고 날이 밝기 전에 마치는 것이다.

 

빛의 예식을 거행하는 순서를 보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빛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그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① 먼저 성당 바깥 적당한 자리에 모인다. 불을 댕길 화로를 준비하고 저마다 손에 초를 준비한다. 사제와 봉사자는 부활초를 들고 그 자리에 나아간다. 빛의 예식은 불 축복으로 시작되는데, 침묵과 어둠 속에서 시작한다. 어둠은 침묵이요 고요함이다. 그래서 아무런 노래도 하지 않는다. 사제가 간단한 설명과 불 축복을 하고, 이 시대를 다스리시고 밝혀주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부활초에 향덩이를 꽂고 난 다음 불을 댕긴다.

 

② 이어서 빛을 밝히는 부활초가 앞장서서 성당 안으로 행렬해 들어간다. 그러면 신자들도 뒤따른다. 아직 손에는 불을 붙이지 않은 초를 들고 있다. 행렬을 하는 동안 세 번에 걸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빛’이시라는 것을 교우들을 향해 돌아서서 큰소리로 선포한다. 성당 입구에서 외치고 두번째 중간에서 외친 다음에, 신자들의 손에 든 초에 불을 밝혀준다. 세번째로 제대 앞에서 외친 다음에는 독서대나 제대 옆에 마련된 부활촛대에 부활초를 꽂는다.

 

부활초와 신자들이 뒤따르는 행렬은, 빛이 그리스도에게서부터 우리에게로 점차 확산되는 것을 나타내준다. 또 이 초에서 저 초로 빛이 전달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빛을 받았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빛으로 무장되었다. 그리고 그 빛을 이웃들에게 전한다. 빛은 그렇게 전달되고 어둠에 잠겼던 우리 주변과 성당 안과 온 세상을 비춘다. 나의 작은 빛 하나가 넓은 곳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작은 빛이 여럿 모이면 더 넓은 곳을 밝힐 수 있다. 우리의 빛들이 그 자체로 생명의 힘을 갖는 것이고 어둠을 광명으로 바꾸게 된다.

 

그래서 신자들도 부활초를 따라 모두 함께 행렬을 하는 것이 더욱 좋을 것이다. 흔히 성당 마당이 아니라 신자들이 보이는 성당 문간에서 예식을 거행하고 신자들은 그냥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촛불을 댕기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스도의 빛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지만, 빛이신 그리스도를 몸소 뒤따르는 체험을 실현하는 상징적인 행렬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 깊은 의미를 더 깊이 있게 체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③ 그리고 빛의 예식에서 절정에 해당되는 ’부활 찬송’을 노래한다. 어둠의 신비와 빛의 능력에 대한 노래, 부활과 새 생명의 능력에 대한 노래, 이 구원의 신비를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한다.

 

이렇게 부활 성야 예절에서 빛의 예식을 통해, 주님의 빛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스도 부활의 새 생명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은 주간의 첫째 날이며, 하느님께서 빛을 창조하신 날이다. 빛의 예식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빛과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기억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새해 새 계절인 봄기운과 함께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

 

* 나기정 다니엘 - 신부,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경향잡지, 2000년 4월호, 나기정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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