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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26 조회수962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5월 26일 수요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If one of you wants to be great,
he must be the servant of the rest."
(Mk.10.44)
 
 
 
제1독서 1베드로 1:18-25
복음 마르10,32-45
 
 어제는 서울의 어느 성당에서 강의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성당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알고 있는 유일한 정보는 제가 있는 간석4동 성당에서 그 성당까지 50분정도면 갈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저로써는 그 정보만 믿고서 정확하게 50분 전에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첫 강의가 10시 30분인 관계로 여유 있게 2시간 전인 8시 30분에 출발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출근 정체 시간도 예상했어야 하니까요.

 역시 경인고속도로는 출근하는 차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주 느린 속도로 때로는 한참을 정지한 후에나 조금씩 진행할 뿐이었지요. 조금 답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찍 출발하여 여유가 있었기에 음악을 들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화나는 일이 생깁니다. 글쎄 저와 앞 차 간격이 조금이라도 벌어지면 신호도 하지 않고 끼어드는 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다짐했습니다.
 
‘아니 저렇게 얌체가 있을까? 자기만 바쁜가? 빨리 가면 또 얼마나 빨리 간다고. 저런 차들에게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으리라.’

 그러면서 앞차와의 간격을 전혀 두지 않고 운전을 했습니다.
 
 잠시 뒤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그 성당 근처까지 거의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당의 이정표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걱정입니다. 지금 있는 자리는 2차선인데, 성당으로 들어가려면 우회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4차선으로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오른쪽으로 진입하겠다는 신호를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앞차와의 간격을 오히려 좁힙니다. 저는 천천히 앞으로 가면서 간격이 조금 생기자마자 얼른 차선을 바꿨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요.

‘정말로 너무한다. 양보 좀 하면 얼마나 좋아?’

 바로 그 순간 고속도로에서 양보하지 않은 제 모습이 떠올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 역시 똑같은 사람이었지요. 아니, 지금 제가 욕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저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처럼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섬기는 사람, 즉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요.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제의 체험을 통해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바로 나를 끝없이 낮추는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해 판단과 단죄를 하지 않을 것이고, 그만큼 주님께서 명하신 사랑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삶, 모든 이의 종이 되는 삶. 때로는 능력이 없는 약자의 삶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하느님 나라에서 판결이 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하세요?(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중)

 어떤 소년이 있었는데 이 소년에게는 어렸을때부터 친구처럼 지내는 말이 한마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어요. 사랑하는 그 말이 몹시 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에게 소년이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요. 또 마침 집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아파하는 말에게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진땀을 흘리며 괴로워 하는 말에게 소년은 자신이 해 줄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원한 물을 먹이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지요. 그리고 자신의 사랑스런 말에게 시원한 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의 눈물겨운 간호도 보람없이 말은 더 심하게 앓는 것이었어요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가 오셨고 이 소년은 할아버지에게 말했지요. 자신의 말이 아프다고... 할아버지는 말을 유심히 보더니 혹시 무엇을 먹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소년은 말이 너무나 진땀을 흘리고 괴로워해서 시원한 물을 주었다고 말했지요. 이 말을 듣자 할아버니는 소년을 나무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이 아플때 찬물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줄 몰랐단 말이냐?"

 소년은 대답했지요.
 
 "정말 몰랐어요. 하지만 제가 얼마나 이 말을 사랑하는지 아시잖아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잠시 침묵한 뒤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 아는 것이란다."

 사랑한다는 것..그것은 정말로 상대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아는 것이라는 이 할아버지의 말씀에 깊은 공감이 생깁니다. 사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요즘 대중가요치고 사랑이라는 단어가 안 들어간 노래가 없는 것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는지 알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랑하세요? 혹시 입안에서만 맴도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상대에게 알맞게 사랑하는 법은 알지 못하고 아니 아예 관심도 없이 상대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만 열심히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Ronan Hardiman - Secret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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