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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숫자로도 하느님을 새기지만…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5-31 조회수372 추천수1 반대(0) 신고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19)

     


                                     숫자로도 하느님을 새기지만…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꽤 오래된 습관인 것만은 분명하지 싶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정해진 숫자에 맞춰 동작이나 행동을 하는 거지요.

등산길의 우물에서 물을 마실 때 세 모금씩 네 번으로 나누어 마시곤 합니다. 그러면 3×4=12, 열두 모금이 됩니다. 3은 삼위일체와 예수님의 죽음에서 부활에 이르는 날수를 생각하게 하고, 4는 사순절과 사계절이며 성경 속의 여러 가지 40일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고, 12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3과 4와 12의 신앙적 의미들을 가슴에 되새기기 위한 뜻으로 물을 그런 식으로 마시는 것이지요.

등산을 하면 적당한 바위에 상체를 부딪치는 동작도 합니다. 복부와 하복부와 등을 번갈아 부딪치는데, 이것도 40번씩 세 번을 하면 120번이 됩니다. 운동기구에 올라 허리 돌리기 운동을 할 때도 그런 식으로 하고, 걷기 운동을 하며 묵주기도를 할 때도 40단이 아니면 4꿰미를 하려고 의식적으로 신경을 씁니다.

심지어는 장거리 운전을 하며 좋아하는 건빵을 먹을 때도 열두 개나 40개를 세어 꺼내놓고 먹습니다. 아쉬우면 조금 더 먹는 경우도 있지만….

언젠가 이른 아침에 냉장고의 물을 꺼내 마시는데, 아내가 나를 보고 묻더군요.

“왜, 물이 너무 차서 그래요?”

그때 나는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내 행동을 자각하면서, 그 ‘버릇’에 내심 감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지요.

“물이 차서 그런 건 아니야. 물 한 컵 정도야 몇 모금으로 다 마실 수 있지만, 나도 모르게 조금씩 숫자에 맞추어 마신 것 같아.”

“숫자에 맞추다니요?”

아내가 의문을 표할 것은 당연지사.

“세 모금씩 네 번으로…. 그럼, 얼마가 되지?”
“그럼, 열두 모금이네.”
“내가 왜 그러는지 아남?”
“당신두 차암….”

감탄하는 아내에게 빙긋이 웃어주고 나서, 나는 푸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숫자로까지 하느님을 생각하고 뭔가를 새기며 살지만, 정말로 얼마나 그리스도 신자답게 잘 사는지는 자신할 수 없어. 나도 엉터리일 거야. 놓치거나 미처 챙기지 못하는 게 너무 많아. 생각만 할 뿐 실행하지 못하는 일도 많고….”

                                                                                                지요하 (소설가․태안성당)


*천주교 대전교구 <대전주보> 2010년 5월 30일(삼위일체 대축일)치 제2032호|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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