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월 4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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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0-06-04 | 조회수826 | 추천수16 | 반대(0) 신고 |
6월 4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마르코 12,35-37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Anyway>
제목도 특별한 ‘Anyway’(켄트 케이스 저, 더난 출판사)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참 의미심장한 구절을 접하고 음미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란 정말 어려운 존재다. 때로 사랑하기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자기중심적이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참기 어렵다. 그래도 사람들을 사랑하라.”
‘그래도 사람들을 사랑하라’ 참으로 어려운 과제 한 가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고마운 것은 부담스런 과제만 주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힌트 하나를 덧붙여주더군요.
“때로 사람들이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때는 그들이 다른 논리와 다른 이성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른 관점이나 다른 경험을 갖고 있으면 같은 사실을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인간관계 안에서 수시로 상처 입는 우리들, 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우리들에게 좋은 삶의 지침이 될 말씀입니다.
유다인들 사이에 강생하신 예수님, 공생활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비논리적인 사람들, 비이성적인 사람들, 극단적 자기중심주의에 빠진 사람들 대하시느라 무수한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율법학자들과의 대립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과의 설전이었습니다. 유다 의회와의 마찰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을 아리송하게 만드는 율법학자들의 발언에 조금도 분개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계십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기쁘게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 그들은 참으로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께 올가미를 뒤집어씌우려고 말도 되지 않는 말로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끝까지 그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당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십니다.
계속되는 모함과 시기와 질투 속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이 한 길, 사랑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참 자유인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타인을, 원수까지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사랑의 실천에 있어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지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지지하지 않는다 해서, 그들이 비논리적이라고 해서, 그들이 극단적 자기중심주의를 고수한다고 해서, 사랑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해서, 그들을 포기하거나 그들을 향한 사랑을 철회하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선택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사랑은 무한대로 확장되는 특별한 것입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말처럼 사랑이란 비타민, 미네랄, 단백질처럼 인간의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상대방이 누구든 사랑을 주고받지 않는 것은 본성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피아노나 풍금을 칠 때라도 그 모든 음표가 주님께 대한 사랑의 행위가 되게 하십시오.”(치맛티 신부)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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