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거지를 바라보는 내 시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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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연 | 작성일2010-06-04 | 조회수431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거지를 바라보는 내 시선>
지하도에서 구걸을 하는 여인에게 800원을 주었다. 그 여인도 ‘내 누이’일 터인데, ‘다른 나’일 터인데 실제로 그 여인은 ‘내 누이’, ‘다른 나’가 아니다. 나와 그 여인 사이의 심연이 지옥이다.
<한 번만 눈 감아주면 좋겠다> [서영남 칼럼]
(서영남 씨는 수도생활을 하다가 수도원 원장으로 발령을 내니까 수도원을 나와 자그마한 집에서 노숙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오월 어느 날입니다. 몸이 불편하신 분이 오후 네 시 쯤 국수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식사하러 오신 분은 아닌 것 같아서 차를 한 잔 드렸습니다. 말씀도 잘 하지 못합니다. 더듬더듬 겨우 말씀하시는데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알아듣기가 어려웠습니다.
나이는 쉰하나라고 합니다. 파킨슨씨병에 걸려 말도 잘 할 수 없고 행동하는 것도 힘들다고 합니다. 딸 둘과 살고 있는데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합니다. 병 때문에 일도 못하고 수입이라고는 정부에서 주는 생활비가 전부라고 합니다. 지난달에 중학교에 다니는 딸이 수학여행을 너무도 가고 싶어 해서 무리를 해서 십 몇 만 원을 줘서 수학여행을 보냈더니 집에 여윳돈이 한 푼도 없다고 합니다. 오늘이 어린이 날이라서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서 실례인 줄 알면서도 찾아왔다고 합니다. 마침 지갑에 삼만 천원이 있습니다. 삼만 원을 드렸습니다. 너무 많다고 사양을 합니다. 그래도 받으시고 다음에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오시라고 했습니다.
여든 넘으신 노인께서 잠깐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매일 국수집에 오시면 담배 한 갑과 커피믹스를 드립니다. 영등포의 어느 드롭인센터에서 주무시고 식사하러 민들레국수집에 오셔서 아침을 드시고 쉬시다가 이른 저녁을 먹고 영등포로 돌아가십니다. 오늘 처음으로 노인께서 한쪽 발이 의족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목발을 집고 다니셨던 것을 알겠습니다. 의족을 보여주시면서 조금만 도와달라고 합니다. 의족을 고쳐야 하는데 만 원만 빌려달라고 하십니다. 언제 갚을 수 있을지는 모르시겠다고 합니다. 이만 원을 드렸습니다.
호영 씨가 오랜만에 왔습니다. 목발을 짚고 왔었습니다. 한쪽 발만 있습니다. 전에는 두 발이었는데 깜짝 놀라 물어보았습니다. 한쪽 발이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버거씨병으로 한쪽은 잘라내고 의족을 했었는데 얼마 전에 부셔져버려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여서 의족을 무료로 도움 받을 수 있는데 5년마다 한 번 교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호영 씨는 의족을 한 지 이제 4년밖에 되지 않아서 아무래도 이렇게 일 년은 더 지내야 의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불편해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니까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돈이 없으니 5년을 채워서 그 때 의족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가슴 아픈 하루가 지났습니다.
오늘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모니카와 청송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모니카가 제일 먼저 일어나서 세수합니다. 새벽 네 시 전인데 스스로 일어나서 준비를 합니다.
네 시 반에 청송을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해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벌써 날이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산들이 참 예쁩니다. 연초록입니다. 산 벚나무도 참 예쁘게 피었습니다.
안동 시장에서 떡과 편육을 마련했습니다. 지난달에 청송 형제들이 순대가 먹고싶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순대는 부피만 많이 차지하고 그러니 깔끔하게 돼지머리 눌린 편육으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새우젓보다는 소금을 찍어먹는게 좋을 것 같아 소금으로 준비했습니다.
가랫재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오전에 청송3교도소를 들어갔다가 다시 진보로 나와서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고 방울토마토 한 상자를 더 사서 청송교도소로 들어갔습니다.
담당 교도관이 심각하게 떡과 과일은 되지만 편육은 안 된다고 합니다. 교도관에게 “한 번만 봐 준다면 다음부터는 가져오지 않겠다.”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모니카가 옆에서 애교를 부려도 안 된다고 합니다. 보안과에서 육류 반입 금지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편육을 준비하느라 다른 먹을 것은 조금만 가져왔는데 참으로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형제들이 순대를 먹고 싶어 해서 순대보다는 돼지머리 눌린 편육을 훨씬 좋을 것 같아서 큰 맘 먹고 준비를 했는데 편육을 우리 형제들에게 먹일 길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준비해 간 떡과 과일을 나눠먹었습니다. 그런데 끝날 무렵에 담당 교도관이 편육을 보내왔습니다.
형제들이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많던 고기가 금새 뚝딱 사라졌습니다.
모임을 끝내고 담당 교도관과 함께 나오는데 교도관이 편육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우리보다 늦게 교도소로 들어온 불교모임의 스님께서 튀김 닭을 가져오셨습니다. 교도소 소장님이 허락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주교 모임에는 육류는 안 된다고 했는데 불교모임에서 닭을 먹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큰일 날 것 같아서 부랴부랴 보안과에 다시 허락을 얻어서 천주교 모임에 편육을 넣어드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모임에 나온 형제들과 우리 형제들이 찾아낸 어려운 재소자들 명단을 받아서 영치금을 만 원씩 넣어드렸습니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이 덕평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아주 늦게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편육을 형제들과 나눌 수 있어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서영남/ 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 등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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