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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사랑이란? [허윤석신부님]
작성자이순정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29 조회수541 추천수9 반대(0) 신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것입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9-27<또는 루카 10,38-42>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저는 오늘 독서를 여러번 읽었습니다.

 

 내용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그러데 "서로 사랑합시다!"라는 말은  인생을 살면 살수록 자신 없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렁차게 외치기 보다 속으로 들어갑니다.

 

일방적 사랑이 아닌 서로간의 화합안에서의 사랑은 참으로 보기 드문 경우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자기 방식대로 자기 열정대로 사랑한 나머지

 

이렇게 마음의 상처들을 받고 삽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는 성서말씀을 통해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권고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화합과 하나됨을 사랑을 어떻게 할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랑하는 여러분!이라 앞문장에 달려 있습니다.

 

 

내자신이 여러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기쁜 것인가요 힘든것인가요?

 

 

정답은 힘들지만 기쁜일입니다.

 

 

그힘은 바로 서로사랑합시다의 다음문장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재료를 재배하고 다듬어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데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사실 여러걱정을 하지만 우린 어쩌면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자신을 통해 나누어 주는 것일뿐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말씀입니까?

 

 

내가 사랑하면 하느님게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안다는것!

 

 

우린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왕따시키고 수근덕 거리지 말고

 

하느님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어느 수녀님의 말씀처럼

 

우린 우리에게 늘 함께 존재하는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하듯이 하느님의 사랑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루에 아니 한달에 한번이나 우리의 그림자를 인식합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안다면 그는 얼른 가서  거울을 볼것입니다.

 

 

자신이 유령인지? 존재하는 있는지 말입니다.

 

 

아무리 매일 미사를 다니고 묵주기도를 매일 받쳐도

 

사랑하지 않는사람은 하느님을 모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림자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나자로의 집 바로 장례를 치르는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가십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2000여년전 라자로의 상가집에 예수님의 방문이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사랑은

 

추상적인 개념 혹은 심리적인 마음의 애씀도 아니며

 

인간애적인 연민으로 부터 비롯된 자선의 의미가 아닙니다.

 

 

하느님으로 부터의 사랑은 바로 신비입니다.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선포합니다.

 

 

 바로 미사때 신앙의 신비여!라고 사제가 환호하면 신자들이 답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그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우리는 마르타의 신앙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합니다.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바로 우리의 전례생활안에서 특히 미사성제안에서 완성되고 힘을 얻습니다.

 

 

전례는 하느님 은총이 흘러나오는 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중복입니다.

 

자기 가족 만 챙기지 말고 힘들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나누시길 바랍니다.

 

넓고 깊게 사랑합시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중복입니다. 무거운?

 

 너무 많아서 무거운 그런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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